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한 말입니다. 동시에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요. 오늘 글은 이 문장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각자의 생각대로 붙이는 것이 제목으로 어울려 보입니다. 책을 읽으며 다소 고독해지거나 우울을 느끼기도 했지만 늘 그렇듯 큰일이 아닌 듯 가볍게 털어내는 마음으로 기록해 봅니다.
추석연휴로 시작한 엿새 간의 달콤한 휴가 동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지독하게 전혜린 작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붙잡고 있었고, 결국 책을 읽고 말았습니다. 방금 마지막 장을 탁 덮었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어제는 한라산 1100 도로에 있는 천왕사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려고 했는데 쓰고 싶은 문장들이 목젖을 치고 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휴대폰 메모장에 짧은 글도 기록해 두었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근 마켓에서 어렵게 구한 절판된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왜, 저보다 나이가 조금 더 있는 언니들이 학창 시절에 노트에 문장을 베껴 쓰며 친구와 바꿔보았다고 말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문장이 참 낭만적입니다. 그리고 문장을 통해 엿보는 작가 전혜린은 씩씩하면서 여렸고, 니나(전혜린이 번역한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의 여주인공)처럼 남성적인 강함과 결단성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생전 기고한 칼럼에서 자신을 '번역 문학가'라는 직업으로 소개했던 전혜린이 세상에 남긴 수많은 문장들을 통해 잊고 있던 제 삶의 작은 조각 하나를 찾았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했던 깊은 내면 속 그리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옆집 언니와 같은 모습으로 솔직하게 다가 온 그녀에게 어느새 저도 마음을 열렸던 것이지요.
책을 읽기 전 작가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며 뺄 수 없었던 단어가 바로 '자살'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장 긴 여행을 떠난 그녀의 선택에 '왜?'라는 의문을 계속 가지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지요.
'Fernweh. (먼 곳을 향한 동경)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과 향수. (독일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fern'이라는 단어의 '먼' 곳이 꼭 여행을 떠나고 싶다거나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거리의 개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그녀는 슬픈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놓아두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 슬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녀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만 책 한 페이지를 잡은 손가락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무언가는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약 다시 구라파(유럽)에 간다면 나는 우선 커피를 마시겠다. (...) 내가 만약 뮌헨에 다시 간다면 물론 우선 맥주를 일 리터까지 족기로 하나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마치겠다.'라는 그녀의 '내가 만약' 그러나 그녀가 다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생전에 작은 기쁨이었고 작은 소망 같은 유언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려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사대로가 아닌 어두운 계절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께도 그런 어두운 계절이 있을까요?
이 문장은 225쪽의 마지막 줄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꽤 오랫동안 기억하고 추모하며 살았는데 최근에는 잊고 지낸 저의 '어두운 계절'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 되더라도 나만은 끝까지 기억해 주리라 다짐했던 친구의 이름을 오랜만에 꺼내며 동시에 떠오르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아마도 단양 휴게소?) 사진을 찍었던 철쭉 핀 봄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게-우정, 사랑, 젊음까지도-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forever'를 가장 사랑했던 시절인 16살입니다.
살면서 처음 겪은 죽음은 대개 친척 어른들의 죽음이지만 저는 친구의 죽음이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만나자는 인사로 헤어진, 예고 없이 일어난 친구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집에서 TV를 보며 쉬어도 좋은 날이었는데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김첨지처럼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가장 부탁을 잘 들어주는 친구의 집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은영을 겨우 설득해 오후 3시에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공부를 하기로 했지만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6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 수정에게 집 전화로 연락이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정의 말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듯 웃으면서 "뭐 그런 말을 해?"라고 되물었습니다. 수정이 다시 말했어요.
"현진이가 죽었어. oo병원으로 와."
현진은 제게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다른 반이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으로 놀러 오는 이상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도 이상하더라고요.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중학교 2, 3학년 동안 우리는 같은 반 게다가 짝꿍(짝, 단짝 친구 모두)이 되었습니다. 무척 기뻤던 중학교 2학년 3월의 첫 등교일을 기억합니다. 대원외고로 진학하고 싶었던 현진은 제게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를 매일 새벽마다 녹음해서 카세트테이프를 빌려주었고, 저에게는 친절한 영어 선생님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함께 먼 미래를 상상하며 각자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제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병원 앞 주차장에서 현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참을 헤맸습니다. 병동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데, 또 다른 친구 수임이 와서 영안실은 이쪽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날로 돌아가 '내가 만약' 도서관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더라면 울면서 전화했을 현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매일 붙어있는 짝꿍이지만 속이 깊었던 친구라 오히려 더 내색을 하지 않았을 것도 같지만요. 그래도 제가 알아차리고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왜 슬픈 눈 대신 귀여운 보조개만 보았는지 많이 미안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은 얼른 지우고 되도록이면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날 이후로 현진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죽음을 처음 접한 16살 소녀가 혼자의 힘으로 친구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제자리를 찾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을 바다에 떠다니는 종이배처럼 목적과 의욕, 시간과 추억조차 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되어 다시 생각해도 아니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죽음은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왜!'라는 의문보다 헤아리지 못한 그녀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다고 보여주고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오롯이 혼자 힘으로 채워야 할 고독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어령 교수는 전혜린을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고 말했습니다. 동생 전채린 교수도 "언니의 충만한 생의 알맹이로는 더 이상 이 세상 안에 설 수 없어 이 세상 밖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기름이 완전히 없어진 등잔에서도 기적 같은 불꽃을 피운 그녀의 고독한 삶 속에 고요하고 투명한 행복('고통 속의 무풍지대')이 있었다는 것과 주어진 삶을 열심히 불태우며 살았다는 것에 마음을 쓸어내립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인 문장과 현진이 짓던 보조개가 푹 파인 웃음,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일상과 마음의 기록, 우리가 주고받았던 카세트테이프와 편지가 한 권의 책과 기억 상자 안에 존재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와 깜박이는 두 눈, 손의 온기를 더 오래 느끼고 싶습니다.
현진의 이름을 다시 입에 담기까지는 16년이 걸렸습니다. 현진을 기억해 주는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난 자리였습니다. 잠가 놓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대신 '내 친구를 오랫동안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16살의 기억으로 현진은 경주에 있는 어느 절에서 긴 여행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낯선 곳에서 현진의 흔적을 찾는 것이 싫어 그날 이후 10년이 넘도록 경주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그녀의 고독은 사라지지 않고 가족을 비롯한 남은 사람에게 다양한 감정으로 옮겨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저에게 주어진 고독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떤 괴로움 속에서도 부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장의 마지막 소제목처럼 '행복하게 사는 소망'을 이루며 사는 것이 현진의 마음이리라 헤아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