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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Dec 03. 2023

당신의 첫사랑은 안녕하십니까?

첫사랑은 스노볼이었어요.
그 애에게 선물 받은 스노볼을 뒤집고 또 뒤집어 보았죠. 그 애는 생전 처음으로 여자에게 줄 선물을 골라봤다고 했죠. 처음이라는 말에 긴장을 했는지, 스노볼을 그만 손에서 놓치고 말았어요.
스노볼은 제 것이 된 지 3분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버렸죠.


   12월입니다. 뭍은 엄청 춥지요? 제주도 정말, 정말로 추워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많은 게 얼어버립니다. 저녁이면 집 앞 편의점이라도 다녀와야 했던 역마살 낀 여름날의 모습이 진짜 '나'인가 의심스러울 만큼 집순이가 되고 맙니다. 집에 있으면 일터로, 일터에서는 집으로,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순간이동을 하는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무튼 너무 추워서 외출할 결심이 없는 저에게 겨울밤은 길어서 참 좋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고 나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춥다는 핑계로 설거지도 미루고, 화장을 지우는 것도 미룬 채 저녁마다 장편 소설을 나눠 읽으며 겨울밤을 보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읽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깊은 감동을 받아 프랑스 문학에 빠졌고 이번에는 발레리 페랭<비올레트, 묘지지기>를 읽고 있어요.


  소설에는 가끔 의미 있는 소재들이 등장합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 김유정의 <동백꽃>을 예로 들면, 순박하고 눈치가 없는 '나'는 점순이의 적극적인 표현에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너희 집엔 이거 없지?

  점순은 감자를 내밀며 아무도 몰래 얼른 먹어치우라며 '나'에게 말하지요. 하지만 '나'는 점순이가 생색을 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점순이가 재촉하지요.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감자를 도로 쑥 밀어버리며 말했지요.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점순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눈에 독을 올리고 쏘아봅니다. 급기야 점순이의 눈에는 눈물까지 어리지요. <동백꽃>에서 '감자'는 '나'에 대한 점순이의 관심과 동시에 둘 사이의 갈등이 생기는 계기가 됩니다. 둘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강원도 산골 마을의 소년과 소녀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며 책 속으로 들어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저 웃게 되지요.


  학창 시절에 배운 교과 문학에서만 의미를 지닌 무언가를 찾게 될 줄 알았는데 <비올레트, 묘지지기>를 읽으며 문득 잊고 있던 첫사랑이 떠올랐어요. 예상도 못한 순간에. '스노볼' 눈으로 읽은 단어가 똑똑 노크도 없이 현실로 들어와 잠시 추억에 잠기게 하지요.  


발레리 페랭 <비올레트, 묘지지기> @무지개인간


포장을 벗기니 스노볼이 나왔다. 나는 그것을 뒤집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362p)
나는 계산대의 스노볼을 집어 들고, 있는 힘껏 벽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461p)
나는 울고 난 뒤, (…) 그를 덮고 있는 검은 대리석 위에 새 스노볼을 올려놓았다. (539p)


  <비올레트, 묘지지기>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이렌 파욜과 가브리엘 프뤼당의 만남에서는 스노볼이 세 번 등장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들도 주인공인 비올레트의 남편 필리프 투생처럼 '자신이 비올레트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라고 느낍니다. 프뤼당이 세상을 떠난 뒤 법무사를 통해 남긴 유언장에서 자신의 묘지에 함께 묻히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고 알리며 '서두르지 마. 난 기다릴 수 있으니까. 밑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을 조금 더 즐기라고.'라는 편지를 전해 받습니다.  <동백꽃>의 ‘감자’처럼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의심했지만 스노볼은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렌에게 있는 스노볼의 추억이 제게도 있지요. 이렌에게는 마지막 사랑인 영원을 보여주었지만 저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으로 말이죠.


  스무 살을 며칠 앞둔 열아홉이었어요. 크리스마스가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딱 지금쯤인 것 같아요. 한 남자, 생물학적 남자(XY)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물학적 여자(XX)인 제가 있었죠. 우리 친구 사이였어요. 가끔 남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정작 우리는 좌우로 고개를 힘껏 흔들며 "절대 아니야!"라고 말했던 사이.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해 늦가을에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죠.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저녁 시간에 통화를 하고는 했어요. 어느 날, 생일이 언제냐고 묻던 그가 이번 주말에는 자기가 다니는 Y성당으로 올 수 있냐는 질문을 덧붙였습니다. 그러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주일이 되자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러 온 건지 다른 이를 만나러 온 건지 아무튼 성당에서 만났습니다.


  "자!"

  그가 내민 것은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진 포장지로 싸인 주사위 모양의 선물 상자였어요. 나중에 풀어보고 싶었지만 자꾸만 재촉하는 바람에 그 애 앞에서 포장지를 벗겼지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워터볼. 산타할아버지와 눈 덮인 집 모형이 들어있고 반짝이는 눈가루가 내리는 예쁜 워터볼이었죠.

  "깰까 봐 미국에서부터 조심, 조심해서 들고 온 거야."

  "……." ('고마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줄 선물을 골라봤어."

  "……." ('나도 처음으로 남자에게 선물 받아봐.')

  "뭐라고 말 좀 해봐……."

  "고마워."

  그 순간 동그란 스노'볼(ball)'은 이름을 따르겠다는 결심이라도 했는지 제 손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데굴데굴 굴러가버렸죠. 산타할아버지는 북서쪽으로, 눈 덮인 집은 동쪽, 깨진 유리볼은 동서남북, 스노볼 안 ‘워터’는 지하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 애가 보름 동안 미국 여행을 다니며 고르고 골랐을 선물이, 제 손으로 오자마자 사라져 버렸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어요. 제 것이 된 시간보다 제 것이 되기까지 시간이 더 길고 길었던 스노볼. 깨진 유리 조각을 모아 오초본드로 붙여보려고 했지만 유리가 얇고 날카로워 조각들을 모을 수도 없었어요. 스노볼 안에서는 환상적으로 보였던 반짝이는 눈가루도, 깨진 스노볼의 것은 그저 흙 위에 뿌려진 볼품없는 티끌에 불과했고요.

  "…… 미안해."

  "……."

  깨진 스노볼보다 우리가 친구 이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예감, 우리는 안 될 징조, 그래서 둘 사이에 흐르는 정적에 마음이 아팠어요.

  

  일찌감치 깨진 스노볼이 맞았어요. 한 달 뒤 우리는 마음을 고백할 기회도 없이 서먹하게,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여섯 달 뒤에는 그 애가 제 고등학교 친구와 연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뒤에는 결혼 소식도 들었고요. 스노볼이 깨지지 않고 책상 위에 놓여 있기라도 했으면 무척 속상할 뻔했습니다. 가끔은 '내 인생에 첫사랑은 누굴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다소 애매한 그 시절의 감정에 감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에 따라 그 애를 첫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애매하게 시작도 못한 우리 사이에 비해 마음이 맞으니 미련 없이 '품절남'이 될 결심까지 한 그 애에게, 이제야 그 '친구'가 첫사랑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날 스노볼은 깨지고 뒤늦게 깨달은 제 첫사랑도 깨졌지만, 그 '친구'와 우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어른이 되어 남녀 사이의 우정이란 10년에 한 번 얼굴을 보아도 섭섭하지 않고, 잘 살고 있으면 그런대로 힘든 일이 있으면 또 그런대로 나눌 수 있는 게 우정이더라고요.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스노볼의 존재와 상관없이,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유지되는 우리의 우정입니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무지개인간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써보네요. <비올레트, 묘지지기> 책 한 권이 쏘아 올린 작은 공-스노볼-이 이런 이야기도 익명의 독자님들께 꺼내놓게 합니다. 하긴 아는 사람들과 첫사랑 이야기를 하기에는 음, 뭐랄까 나눠야 하는 더 많은 인생(또는 현재)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비올레트, 묘지지기>는 무척 길지만 길어서, 오래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20대에는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삶과 죽음을 무겁지 않게 다루며 삶의 본질을 알려주는 프랑스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비올레트, 묘지지기>의 마지막 문장에는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이 나와요. <자기 앞의 생>을 먼저 읽고 <비올레트, 묘지지기>를 읽든, <비올레트, 묘지지기>를 읽고 <자기 앞의 생>을 읽든 꼭 두 권 모두 읽어보세요. 삶이 소중해지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렌 파욜이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창문을 열고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외치고 싶다. "화해하세요! 먼저 사과하세요!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세요! 너무 늦기 전에."


  비올레트의 일곱 친구들이 나누는 맥락도 재미도 없지만 행복한 대화도 엿들었어요.

  사람들한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줘, 다들 살아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도 이전보다 사는 게 즐거워진 것 같아. 내려놓았다고 해야 되나.


  삶이 계속되도록,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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