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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an 12. 2024

열 살의 <인간 관계론>

  다정한 독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의 첫 글은 독자님들께서 아껴주시는, 아이가 건넨 따뜻한 말로 시작합니다.

  

  어제 저녁의 일이죠. 요즘은 가급적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설거지를 빨리 끝낸 뒤 늦어도 8시 30분에는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특별히 정한 새해 다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새해 무렵부터 그렇게 하고 있으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마음 가짐을 새로운 시간에 담고 있습니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책을 폈는데 글쎄, 검은색의 글자보다 아이의 손톱 밑에 낀 새까만 때가 더 눈에 띄지 뭡니까. 그래서 반사적으로 외쳤어요.


  "손톱 깎자!"

  

  손톱 길이에서 취향이 다른 저와 막내는 손톱을 깎을 때마다 소란이 생깁니다. 손톱이 길면 불편한 저는 짧게 바짝 깎는 게 좋고, 손톱이 짧으면 뭔가 없어진 느낌이라 불편하다는 막내는 적어도 1mm의 여유를 두고 깎아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40여 년이 넘은 습관인지라 제가 아무리 여유 있게 깎아도 늘 많이 깎았다는 불평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은 매번 가장 고난도의 육아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어찌합니다. 잘 먹으니 손톱도 잘 자라는 것을, 그래서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 것을...


  '딱, 딱!'

  휴지 위에 자른 손톱이 하나씩 놓일 때마다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키워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는 밥을 해줘서 또 고맙습니다!"

  "엄마는 오늘따라 정말 기뻐 보이네요!"

  "엄마는 행복해 보여요!"

  "엄마, 건강하세요!"

  "엄마는 정말 예뻐요!"

  "엄마는 최고예요!"

  "엄마는 정말 멋져요!"

  

  새해부터 이런 감동을 주다니!

  싫은 일이지만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아이의 태도에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세상사에 밝았다. 이들은 당신이나 내가 오려서 모자 안에 붙이고 다녀야 할 속담을 만들었다. 바로 "웃는 얼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상점을 열어선 안 된다."이다.

- 데일 카네기 인간 관계론 中


  오늘따라 손가락이 열 개밖에 없는 게 서운해질 지경입니다. 발톱이라도 자를 게 있나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얼마 전에 손질한 발톱은 더디 자라네요. 그래도 아이가 열 손가락에 담아 준 다정한 말은 마음에 담겼고, 글로 기록해 오래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자주 꺼내 읽으며 4학년(쯤 찾아온다는 4학년 춘기)과 이 시대의 난제, 진짜 사춘기인 중2에게 사랑을 마구 퍼주는 한 해를 다짐해 봅니다.

  

  2024년에도 엄마 라이프, 파이팅!


지난 2023 크리스마스 연휴 때 귤국이 설국이 된 풍경 @무지개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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