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책 읽기
오늘은 가을이 오다가 여름 장마철이 된 것처럼 굵은 비가 쏟아집니다. 태풍 '힌남노'가 대만 남동쪽에서 북상을 시작하면서 새벽부터 제주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 제주에서 처음 맞는 초강력 태풍이라 사실 걱정이 많이 돼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마음마저 흐려져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폈어요.
긍정주의자의 가볍고 빠르게 그리고 '나 중심'적인 책 읽기 여행에 함께 떠나봐요.
<스타벅스 커피, 스타벅스 은행, 스타벅스 코인, 커피콩=비트코인>, 이보람 지음
제목과 컬러가 마음에 들어 슥, 가볍게 빌려 온 책입니다. 제목이 이렇게 길 줄 몰랐어요.
1시간만 읽을 것이라 타임 타이머, 나의 독서 기록 노트, 0.28mm 가느다란 볼펜, 좋아하는 애월 카페에서 사 온 원두로 내린 커피, 그리고 과자를 준비했어요. 책을 읽으며 커피나 와인은 마시지만 과자를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은 날이에요. 뭔가 콰삭 콰삭 씹고 싶어요.
'오! 시애틀!'
얼마 전 브런치에서 올린 책 추천 글이 시애틀 한인 커뮤니티 '케이 시애틀'에 실리면서 애정 하는 도시가 된 시애틀이 스타벅스의 첫 매장이라니! 저자의 문장에 담긴 이야기보다 책 속에서 만난 도시의 이름이 주는 '특별한' 좋은 느낌에 꽂히고 맙니다.
'오! 스타벅스? 대단해! 시애틀? 멋진데! 뭔가 대단히 멋진 일이 생길 것 같아!'
'하워드 슐츠! 1982년!'
또 '나 중심'의 시선이 멈추었어요. 스타벅스 성공 신화의 주인공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로 이직한 해에 제가 태어났어요. 문득 스무 살이 되던 해 다이어리에 적어 둔 패기 넘치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다!
스무 살을 맞이하는 소감, 그리고 두 번째 스무 살까지 겪은 지금. 저는 여전히 가능성과 희망, 긍정을 지니고 살고 있어요. 때로는 구름 속을 꿈 꾼다는 핀잔도 듣지만 희망을 희망하는 것에 감사하고 살아요.
1645년 문을 연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Caffee Florian(카페 플로리안)' 사진을 보며 5년 안에는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 보겠다고 버킷리스트에 넣어 봅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가능성 그리고 이루고 싶은 일의 목록을 상상하면서 기분이 훨씬 나아졌어요. 태풍이 '아무튼' 지나가는 것처럼 지금 마음속에 얹어 둔 고민들도 곧 지나갈 거라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 사이, 몇 주 전 통화했던 부동산 소장님께 연락이 왔어요. 제주는 연세 문화가 일반적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곧 만기일이 다가오거든요. (사실은 한 달 뒤랍니다. 미리 잘 챙겨두면 좋은데, 늘 이렇게 코 앞에 와서야 서둘러요.) 외곽에 있는 타운하우스는 자연 속에서 살기 참 좋지만 병원과 마트, 학교와 15분 정도 떨어져 있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생활권의 범위를 좀 좁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위치에 연세 물건이 나왔어요. 와우! 안 봐도 좋을 것 같은데, 내일 가서 보고 이사 준비도 슬슬 시작해야겠어요.
가끔 어떤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답답할 때 있잖아요. 이틀 전에 제가 그랬어요. 분명히 무슨 '탑'인데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책 속에 답이 있네요! 정답이 있어요.
그러니 마음이 앙금처럼 푹 가라앉는 날, 구덩이 파고 들어가고 싶은 날에는 이렇게 가볍고 자기중심적인 책 읽기로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중심은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