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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24. 2024

반딧불이의 여름밤 무도회

반짝반짝 산양곶자왈 반딧불 축제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장마가 시작되었지만 빈틈없이 맑은 날

 

  다정한 독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도착했어요. 한여름 밤에 열리는 축제 현장에서 빠져나와 자정이 되기 전, 집에 도착했답니다. 그리고는 생생한 축제 현장과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곧장 노트북을 켰답니다. 고로 이 글이 무사히 발행된다면 드디어 생생한 경험을 소개했다는 생각에 저도 기쁠 것 같아요. 뭐 이런 걸로 다?라고 묻지 마세요. 매년 반딧불이 축제를 다녀와 '이 감동을 글로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싱싱한 나머지 여름밤의 달빛에도 금세 생기를 잃고 시들어버리더라고요. 마치 2주만 사는 반딧불이처럼 쓰겠다는 생각도 아주 짧게 반짝였다 그림자가 되어 어둠에 묻혀 버리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 산양곶자왈에서 집까지는 40분,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느라 30분, 금요일 밤이라 맥주를 미룰 수가 없어 편의점에 들렀더니 10분, 얼른 샤워를 하고 노트북을 켜서 앉는데 20분. 대략 100분의 시간이 지났네요. 그 사이에 다른 사건이 불쑥 끼어드는 참사는 없었으니 축제 현장을 전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오늘은 꼭, 이번에는 반드시 반딧불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거든요.


  제주에서 반딧불이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지역은 청수리 곶자왈산양큰엉곶입니다. 저는 두 군데 다 좋았어요. 둘 다 지역주민들이 서식 환경을 지켜가며 운영을 하고, 축제 기간에는 지역 먹거리도 팔고 있어요. 무엇보다 신비로운 반딧불이가 많이 살고 있으니까 좋을 수밖에요. 그래도 만약 어린아이와 동행한다면 산책길이 잘 만들어진 산양 곶자왈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청수리는 3개의 코스로 산책길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는데 저는 달빛 아래에서 걷기 운동을 할 작정으로 긴 코스를 다녀왔더니 만보계가 8 천보를 넘게 찍었어요. 그래도 반딧불이의 군무를 오랫동안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모든 전자기기의 조명을 끄고 어둠이 내려앉는 그곳을 오직 달빛과 통통한 막내의 손에 의지해서 걸으며 반짝반짝 반딧불을 만나고 왔어요. 처음에는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해마다 보았더니 올해는 미혼 반딧불이들의 왁자지껄한 구애 현장을 훔쳐보고 온 기분도 들었어요. 서로의 화살표가 어떻게 어긋나는지는 예측 불가, 확인 불가였지만 날개가 퇴화되어 풀잎에 붙어 빛을 내는 암컷 반딧불이를 만나기 위해 신나는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수컷 반딧불이의 요란한 반딧불을 보니 오늘 밤에도 몇 커플이 탄생한 것 같아요.


  제주 곶자왈 반딧불이 축제에서 만날 수 있는 반딧불이는 주로 '운문산 반딧불이'라고 해요. 운문산 반딧불이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라도 합니다. 제주를 기준으로 5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한적한 여름밤에 산책을 하다 황금색의 반딧불을 보신다면 '운문산반딧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운문산 반딧불이가 출현하는 기간 때문에 반딧불이 축제는 매년 6월 초에서 7월 초, 맑은 날 밤에 열린다는 것도 기억에 두시면 동화 같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요.

 

    곶자왈에서 한여름의 반딧불 축제가 열리는 까닭은 반딧불이의 먹이가 이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환상적인 불빛을 내며 동심을 자극하는 반딧불이는 무엇을 먹고 살까요? 아주 놀랍게도(전 이 영상을 보고 심하게 부정했거든요) 애벌레 시절의 반딧불이는 어마무시한 육식성 공룡 아, 아니 곤충입니다. 반딧불이 애벌레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먹이는 달팽이로 독침을 찔러 달팽이를 사냥해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습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지만 성충이 된 반딧불이는 입이 퇴화하여 이슬만 먹는다고 합니다.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이 '개똥벌레'라 개똥을 먹고살까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더라고요.


  다시 곶자왈 입구로 돌아와서 함께 입장을 해볼까요?

  


이것이 반딧불이를 만날 결심으로 모인 우리의 약속입니다 (출처: 반딧불이 마을 청수리 누리집)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반딧불이를 보러 함께 갑시다. 반딧불이 탐방은 운문산 반딧불이의 활동 시간이 밤 9시 전후인 점을 고려해서 입장 기준으로 저녁 8시부터 밤 9시까지(코스에 따라 30분~1시가 30분 소요) 이루어지며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예약한 시간에 맞춰 인솔자 한 분의 안내에 따라 이제 입장을 합니다. 닫힌 곶자왈의 문이 열리고 그 뒤로 펼쳐진 깜깜한 여름밤의 무도회장으로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겨봅니다. 몇 걸음만 더 걸었는데 반짝반짝 반가운 반딧불이 보입니다. 이 작은 생명체는 어떻게 이토록 순수한 빛을 내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사랑받을 만한 곤충입니다.


  촬영을 할 수 없어 매번 눈에 신비로운 반딧불과 생각을 담아왔는데 올해는 산양 곶자왈의 운영 방식이 조금 바뀌었네요. 탐방로의 중간쯤, 정자와 흔들 그네가 있는 공터에서 촬영 시간이 주어집니다. 게다가 초록색의 레이저 조명이 탐방객들이 상상으로 그렸을 반딧불의 이미지를 눈앞에 펼쳐주고요.

 

제주 산양큰엉곶 반딧불이 축제 @무지개인간


  마치 은하수 속에 들어온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말입니다.

  분명 입장할 때 우리들의 약속을 함께 읽으며 반딧불이를 만날 귀한 다짐으로 하고 걸어왔는데 말이죠, 이런 불빛은 무척 예민하기로 소문난 반딧불이에게 지장이 없을까요? 조금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반딧불이를 비롯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께 고자질을 했습니다.

  "저런 인공불빛은 반딧불이가 살아가는데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점이 너의 생계와 관련이 있느냐?"

  "아니오."

  "그럼, 네가 그들만큼 반딧불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느냐?"

  "아니오."

  "그렇다면 반딧불이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왜 불편해하느냐?"

  마음속 대화를 통해 대번 불편한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매년 반딧불이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1년 동안 준비해 주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지요.


    어쨌든 5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그 시간 동안은 휴대폰을 꺼내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오두막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안 찍어도 괜찮은 저는 천천히 둘러보며 노란 불빛의 반딧불을 좇을 수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반딧불이 수컷의 발광 댄스를 목격했네요.


반짝 빛을 내는 운문산 반딧불이 수컷 @무지개인간

  

  사실 이 신비로운 불빛은 꼭 곶자왈이 아니라 제주의 여름을 즐기러 오신다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답니다. 몇 년 전에 살았던 해안동에서는 늦여름날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이 되면 '늦반딧불이'를 집 앞 정원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이런 일도 있었네요. 저녁을 먹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늦반딧불이를 보고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집안의 조명도 모두 끈 후 반딧불을 감상하기도 했어요. 물론 조심스레 잡아서(늦반딧불이는 곶자왈에서 만나는 운문산 반딧불이보다 크기가 큽니다) 무사히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었고요. 한라수목원 근처에서 사는 지인도 저녁 식사 후 산책하기 좋은 8월 말에서 9월 사이에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반딧불이가 활동하는 시기와 시간을 잘 맞춘다면 지속적으로 초록빛을 내는 늦반딧불이와 조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5분의 휴식이 끝나고 다시 출발할 시간입니다. 이제부터는 양 옆으로 수국이 핀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며 반딧불이 생태 체험을 마칩니다. 이 때는 더 많은 반딧불을 볼 수 있어요. 눈으로는 반딧불의 경쾌한 움직임을 따라가 보시고 코로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은은한 꽃 향기를 느껴보세요. 그리고 자야 할 시간인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말도 꼭 찾아보시고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말을 건드리지는 마세요. 다치지 않고 이번 반딧불이 탐방을 마치셨다면 이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빛으로 나를 이끌어준 두 눈의 엄청난 활약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또 비록 등만 보여 주는 '앞에 가는 사람'이지만 내가 갈 길을 먼저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요. 이렇게 자연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주더라고요.


  다정한 독자님께서도 이번 여름에는 반딧불이의 고요한 무도회, 달빛을 따라 반딧불이 그리는 여름밤 축제를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튜브에서 찾은 반딧불이 영상을 몇 개 올려드립니다.


<육식파 반딧불이 애벌레의 달팽이 사냥>

반딧불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달팽이 �  늦반딧불이 애벌레의 달팽이 사냥 (youtube.com)


<반딧불이 한살이>

반딧불이의 성장과정 (youtube.com)





  + 다정한 독자님, 앞에 쓴 글(초당옥수수를 먹을 땐 (brunch.co.kr))이 많은 관심을 받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새로운 글을 썼습니다. 늘 부족한 글을 다정한 시선으로 채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년 여름에는 용인 에버랜드에서 '한여름밤의 반딧불이 체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에 알부터 애벌레, 번데기까지 반딧불이의 한살이를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게다가 1만 여 마리의 반딧불이의 무도회 속에서 네버랜드로 온 듯한 환상적인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고요. 올해는 아직 공지가 되지 않은 듯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에버랜드도 관심을 가지고 공지를 지켜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이렇게 길게 써놓고 또 덧붙이자면 연재를 고민하고 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해마다 봄부터 초가을까지 나비를 키워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를 11년째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 예쁜 나비를 못 보면 어쩌지,라는 생각 해서 시작한 일인데 그 사이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를 나비를 키우며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손주까지만이라도 볼 수 있도록, 자연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에피소드 중심으로 정리해서 연재를 해볼까 해요.

  계획형이 아닌 제가 만약 연재를 시작한다면 무척 큰 용기를 내 계획을 세운 것이니 지금처럼 따뜻한 관심 부탁드려요^^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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