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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11. 2022

뭣이 중한데?

힌남노만 대비했다가

  세어(볼 수는 있지만 귀차니즘 성향의 IXXP유형이라) 보지 않았지만 일주일 만의 글쓰기인 것 같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 지난 강풍에 마당으로 철판이 2장 날아와 아주 깜짝 놀란 일이 있었던지라 힌남노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바짝 긴장을 했더랬다.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음식, 생수, 그리고 시간을 위로해 줄 와인과 치즈까지, 이 마트 저 마트를 다니며 열심히 장을 봐 뒀다.

  'OK! 화분도 현관에 뒀고, 이제 준비 끝!'

  그 사이, 돌봐야 할 손을 태풍에 쓴 그 찰나의 순간,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아, 남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하던데, 나는 왜 그게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2020년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하고 첫 기사가 속보로 보도되던 그때, 여섯 살이었던 겨울이는 7살 형님들의 졸업식에 참석 중이었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모두 멈추었다. 종업식은 문자로, 새 학년의 시작도 기약이 없었다. 지인들과의 단톡방에는 우리만의 24시간 코로나 상황실이 만들어졌고, 길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코로나의 공포만큼 우리의 생활 반경도 좁아졌다. 아니 집 밖을 벗어나질 않았다. 다행히 우리는 거실 창으로 범어대성당의 넓은 정원을 누릴 수 있었고,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의 예쁨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그나마 감사하며 집콕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 밖 온 세상은 고요했다. 어쩌다 앰뷸런스의 소리라도 들리면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2년 6개월이 넘도록 피해 온 코로나가 야비하게 내가 태풍 준비를 한다고 한 눈 판 사이 우리 집에 와버렸다. 요즘 늦게 잔다고 피로가 쌓이기도 했지, 여름부터 계속 정신없이 살기는 했어,라고 후회해 보지만 아무튼 코로나는 왔고, 어지럽다던 아이는 갑자기 열이 오르며 오한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겨울이가 열이 난 게 3-4살쯤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열이 나면 어떻게 했는지 꺼내 쓸 프로그램이 내 머릿속에 없었던 것이다. 처방받은 약은 언제 먹어야 하는지 해열제는 몇 시간 간격인지 읽고 또 읽었지만 밤 사이 교차 복용했다는 해열제는 같은 성분의 껍데기만 다른 약이었고, 뒤늦게 어렸을 때 물수건으로 닦아 준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우당 탕탕이였지만 날이 밝고 겨울이의 열을 깨끗이 내렸다.


  "휴우-"

  아이의 열이 내리고 이틀 동안 잠자는 숲 속의 왕자가 되어버린 겨울이가 평소의 모습을 찾아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닭 한 마리를 사서 찹쌀을 넣어 백숙을 끓이고, 한우 꼬리뼈를 사서 꼬리곰탕을 3번 끓여냈다. 건강을 챙기라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리. 지나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또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생겼으니 건강을 더 잘 챙겨야지.



  그리고 출산이 임박한 길냥이는 태풍도 잘 지나고, 어제까지 꼬리곰탕과 백숙을 나눠 먹었는데 지금은 어딘가에서 출산 중인가 보다. 현관문을 열거나 "미아오!"하고 부르면 열 번 중 세 번은 오는데(하하, 길들여지지 않아요) 전혀 오질 않는다.

  '지지배, 우리 집 현관에 네가 좋아하는 자리에 수건도 깔아놓았는데 이 눔 지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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