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거실 안으로 햇살이 길게 드는 오후라 창가 자리에 앉았다.
점심 식사와 뒷정리까지 다 끝낸, 적당한 분주함과 여유로움의 사이에 앉아 맑은 하늘을 보며 '오늘은 참 글쓰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지금 당장 무덤으로 가야 한다면, 가지고 가고 싶은 한 가지. 살짝 들뜬 기분 탓인지 음악만 챙겨도 될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한림에 있는 피자 가게에 가면서 유튜브가 믹스해 준 음악을 들었다. 유튜브의 정성인가 (마케팅의) 성공인가!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들과 좋아하는 음, 게다가 한때 푹 빠져 듣다가 요즘은 잊고 있던 노래들을 기억해 주는 감성 마케팅까지 유튜브의 믹스는 나를 사로잡았다.
너와 작은 일상을 함께 하는 게 내 가장
큰 기쁨인 걸 넌 알까 내 세상 속에 넌 빛이 되어 지금 모습 그대로 내 곁에만
(...) 나의 모든 날들을 다 주고 싶어
내 이 맘을 모두 전하고 싶어
마크툽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와와 와우,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문장들만 모아 만든 이 노래는 요즘 아이들의 말처럼 '찢었다!'는 표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작은 일상, 함께, 큰 기쁨, 내 세상, 빛... 과 같은 작고 소중한 단어들 덕분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소중해지는 순간을 만났다. 가수는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라며 나를 추앙하고, 나 역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하며 우리의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노래의 힘이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윤도현 '흰 수염고래'
이어서 나오는 YB 윤도현의 노래는 정말 언제 들어도 참 좋다. 윤도현의 노래 중 '사랑 TWO'. '나는 나비', '흰 수염고래'를 좋아하는데 특히 흰 수염 고래는 도입부가 너무 좋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꼬리로 해수면을 살짝 치는 장면이 떠올라 마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조각배를 타고 둥둥 떠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흰 수염고래'를 듣고 있으면 스무 살을 시작하는 해, 다이어리를 사고 적은 첫 메모인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다.'가 생각이 난다. 지금 나는 이미 두 번의 스무 살을 보냈다. 하지만 저 바다처럼 여전히 내가 만들고 살아갈 세상은 넓고 흰 수염고래처럼 나의 재능도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넘나들며 잘 자라 가고 있다.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음악대장 하현우의 버전으로 처음 들어 본 故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은 그가 생전 가장 아끼는 노래이자 훗날 자신의 묘비명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쓰고 했던 곡이다.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의 매력에 뒤늦게-십 년이 지나- 빠지면서 '돌멩이', '하여가', '일상으로의 초대' 등 <복면가왕>에서 부른 노래를 들으며 우연히 알게 된 노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 천상병
죽음이란 소풍을 끝내고 여행을 끝마친 후 다시 돌아가는 것, 어쩌면 하늘나라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상병 시인과 신해철 가수가 글을 쓰며 삶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고 신나서 소풍과 여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려놓는 마음, 욕심을 내려놓아 마음이 가볍고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내 몫이 아닌 일에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를 지켜야겠다.
만약 오늘 무덤에 간다면 나는 노래를 가져가겠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