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를 보러 갔다. 타로카드라면 연애운을 점쳐 보던, 우리를 기대하고 실망하게 만드는 그 카드점이다. 내가 십 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가는 딱 그쯤에 유행했으니 20년 만에 보러 간 것이다. 제주에서 타로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나서 나에게도 연락처가 왔으니 '진짜 잘 볼까?' 하는 의심을 할 필요는 없었다. (유명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았을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냥 일단 예약부터 했다.
약속한 시간, 정각 10시가 되자 복스럽고 귀여운 보조개를 가진 엄마 같은 타로 선생님께서 나오셨다.
"궁금한 거 있어요?"
타로 카드 풀이가 끝이 나자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궁금했던 것은 이미 말씀해 주셨고,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워 담기에도 내 손과 머리는 바빴다. 게다가 평소에도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은 아니라 오늘을 위해 질문거리를 적은 메모도 준비하지 못했기에 머릿속은 하얘졌지만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이 시간을 놓치기도 싫었다.
"음, 다 말씀해 주셔서 딱히 없는데 제가 뭘 물어보면 좋을까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1시간의 시간이 금방 흘렀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를 끌어올린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은 "자기는 '트라우마'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냥 즐겁게 살면 돼요."이다. 누군가는 삶은 고통이라고까지 말했는데 즐겁게 살면 되는 운명이라니, 참 복 받았다. 혹시나 그 말이 아니더라도, 어려움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단단하게 바로 세우는 생각 속에서 삶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가장 오래 곱씹어 보게 되는 말은 "내년에는 인성을 생각하면 안 돼요. 사람이 어떻게 저렇지,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한 노력은 늘 연습 중이지만 이번에는 생각을 덧붙일수록 짙은 씁쓸한 기분도 덧칠해진다. 세상이 삭막해질 거라는 이야기인지, 내 주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인지 내년을 보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을 아끼고, 감정을 비우며 '나'에게 더 집중해야겠다.
20년 만에 본 타로카드는 한 마디로 좋았다. 예전의 가벼운 느낌 대신 쌓인 나의 시간만큼 타로카드의 메시지도 묵직한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삶이 하나이듯 무의식적으로 내가 하는 행동들도 하나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한때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방향을 바꾸며 흘러야 하는 것인가 고민을 깊게 했다.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고 확신하지만 매 순간 고민하고 고르는 선택은 어쩌면 전자의 삶에 이미 프로그램처럼 들어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하여튼 잘 살고 있다는 중간 점검을 받았으니 다시 또 열심히, 나 답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