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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Oct 24. 2022

이 빛을 보기까지

기계치의 셀프 LED 매립등 교체기

 모든 출근은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듯 오늘도 무사히 출근을 했습니다. 제일 먼저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를 시작하며 밤 사이 별 일은 없었는지 공간과 인사를 나눴어요.

  '너도 무사했구나!'

  청소를 마친 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어린이들이 등원하기 전까지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고민을 하며 책상에 앉았어요.

  꼬르륵, 아하! 몸이 원하는 것은 마음의 양식이 아닌 진짜 밥이었군요. 이런,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도 배민을 뒤져봅니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배고픔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끼니를 거르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점점 밥 먹는 게 귀찮다는 소식좌들의 말이 이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뭘 할까 고민하는 사이 어린이들의 등원 시간은 코 앞으로 다가왔어요.


  책상에서 앉아 텅 빈, 어린이들의 발랄함으로 공간이 차기 전의 모습을 빙 둘러보았어요. 매일 어린이들을 만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앗! 그런데 천장 조명 하나가 이상해요. 어둑어둑한 빛을 힘겹게 내고 있어요. 하긴 1년이 되도록 저 자리에서 빛을 밝혔으니 이제 수명이 다할 때도 되었어요. 마침 미리 준비해 놓은 교체용 전구가 있어 어린이들이 오기 전 교체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엉덩이가 매우 무겁단 말이죠. 억지로 의자에서 겨우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발바닥이 무겁단 말이죠. 쳐다만 보다 다시 앉았어요.

  분명 장시간 앉아 있어도 편안하다고 해서 고른 의자는 오늘따라 어딘가 불편하게 배기는 것 같아요.


  의자가 아니라 양심의 울림일까요? 다시 벌떡 일어났어요. 이번에는 조금 더 움직여 어둑한 불빛 바로 밑까지 다가갔어요. 흐린 불빛이지만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네요. 

  '아, 갈아야 한다. 갈아야 한다. 지금 당장 갈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피하고 싶다.'

  사실 저는 기계치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는 절대 아니고요, 어느 순간부터 기계들이 '스마트'라는 별명을 하나씩 달고 나왔던 순간부터 어렵고 복잡해진 것 같아요. 평소에도 프린터 잉크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저는, 지금 머리 위에 있는 불빛 아래의 그림자만큼 작아졌어요.


등 나가면 전화 주세요. 전기라서 위험하니까 혼자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은 마음이 비빌 곳을 찾았어요. 인테리어를 해 주신 대표님의 신신당부가 마음속 어느 공간에 봉인되어 있다가 호이! 하고 나타났네요. 전화를 걸어서 부탁을 해볼까 하다가 '요만한' 작은 전구 때문에 부탁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습니다. 전구 하나도 못 가는 여자가 되지 않기로 했어요.


  '이까짓 것! 내가 해봐야겠다!'

  LED 매립 전구를 교체하는 법을 검색해서 읽어보았어요. 생각보다 간단한 일 같아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글로 배운 셀프 교체기는 흠도 있지요. 매립등을 잡고 오른쪽, 왼쪽으로 '이렇게, 이렇게' 돌리다 보면 등이 빠진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가 안 돼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등 나가면 전화 주세요. 전기라서 위험하니까 혼자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요.


  '이까짓 것! 내가 다시 해 봐야겠다!'

  세게 돌리면 벽지가 찢어지기 밖에 더 하겠어요? 다시 매립등을 잡고 '이렇게, 이렇게' 돌려봅니다. 

  아, 안돼요. 그래도 다시 도전해 보았어요. 이번에는 자를 가지고 와서 억지로 밀어 넣어 틈을 만들고 오른쪽, 왼쪽으로 '이렇게, 이렇게' 돌려보았어요. 휴, 이제 희망이 보여요. 마지막 힘을 주어 당겼더니 매립등 전체가 쏙 빠집니다. 조금 더 빼니 컨버터도 나왔어요. 조심스럽게 전선을 빼고 새로운 매립등에 이어줍니다. 



  글로 배웠지만 그나마 수월하게, 혼자 힘으로 해냈어요! 이런 것도 해내다니 뿌듯하네요.

  '전구도 잘 가는 여자' 타이틀을 얻기에 충분한지 이제 불을 켜서 확인해 볼게요. 제대로 잘 연결했으니 느낌에 불도 들어올 것 같아요. 스위치를 켜러 종종걸음으로 갑니다.

  

  "ON!"

  켜졌어요!

 

  켜졌네요. 불 모양은 다르지만 불이 켜졌어요. 매립등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되나 봐요. 아까 봤을 때는 분명 똑같이 생겼었는데 불을 켜니 다르네요. 그래도 밝으니까. 하지만 다음에는 상세페이지도 꼼꼼하게 잘 살펴보며 사야겠어요. 조명 하나가 달라도 일단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으니까 다시 부지런쟁이 요정이 강림하는 날, '모양 맞춤'으로 단장에 들어가야겠어요. 

  셀프 교체한 티를 내는 셀프 교체 결과물! 역시 과정은 순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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