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Oct 13. 2022

공간 디자이너

본캐는 공간 지킴이

  가끔 살면서 겪는 일들이 이상하게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평행선처럼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우주 밖에서부터 연결된 듯 삶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내가 이런 우연에 감격을 받을 때는 주로 책을 읽는 동안이다. 읽고 싶어서 책장에서 고른 책이, 아무런 기대 없이 산 책이 내가 가진 문제를 풀 열쇠를 보여줄 때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절대적인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고, 듣고,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꼭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요즘 내가 자주 만나는 단어는 '공간'이다.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유 오피스, 공간 대여업 같은 요즘 뜨는 업종을 떠올릴 것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서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생각이 가득  사람이라면 인테리어를 연결 지어 생각할 것이다. 이렇듯 관심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각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는 공간은 마음속에 두는 공간이다. 금요일마다 배우고 있는 에니어그램 수업과 토요일의 요가 선생님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에게 필요한 단어임을 알아차릴  있었다.




  에니어그램 수업에서 만난 공간은 많은 엄마들의 공통점이자 관심사인 자녀와의 관계에서 오는 마음속 공간이었다. 가장 흔한 예로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즉시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혹은 손이 먼저 나가는 일이 없도록 상황과 감정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이: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 뭐라고? 너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

    두 사람의 기분에 빨간 불이 켜지는 데에는 5초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다음 식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엄마의 마음은 누르러질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을 무척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이건 나의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마음도 좋을 리는 없다.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나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엄마와 갈등이 있는 날에는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자존심이 셌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속 공간은 관계를 말랑하게 변화시킬  있다. 방법은 아이와 엄마의 대화 사이에 '공간' 넣는 것이다. " 엄마 때문이야!"라는 다소 억울한 비난이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마음속으로 하나, , , , 다섯을 세어보거나 시원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멈춤을 통해 그다음 나올 엄마의 말은 (완전한 부드러움의 경지까지는 르지 못할지라도) 아이와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드는 일은 막을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의 60% 노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노력이 이루지 못할 성공도 없으니까.




  에니어그램을 통해 알아차린 '공간'이 주는 힘을 깨달은 후 토요일의 요가 선생님을 만났다. 토요일의 요가 선생님은 수련을 시작하기 전 짧은 명상을 통해 완전한 휴일의 시작을 이끌어주신다.  그때 선생님의 안내를 통해 다시 공간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주 요가를 처음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불편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둔다면 오히려 편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요가에서는 호흡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잠시 멈추기로 공간을 점점 넓혀가도록 의식해 보세요."

  요가를 할 때 호흡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어 그 공간을 그대로 바라본 후 호흡을 내쉬며 몸을 이완시키는 활동을 반복하며 내가 한계를 점점 극복해간다. 어쩐지 무릎이 조금씩 곧게 펴지고 이마는 이제 종아리 중간쯤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은 나에게 말과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을 주고 이번에는 신체의 한계를 알아가며 천천히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그래서 요가 수련이 끝난 뒤에도 마음속 공간을 만들어 이어가려는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올 가을, '공간'은 내 삶에 두 번 등장했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삶에서 자꾸 만나는 반복되는 단어는 지금 나에게 필요하거나 중요한 핵심 단어라는 것이다. 말을 할 때도 입 밖으로 내밀기 전 공간을 두고 되도록이면 긍정적이고 편안한 말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한 입과 한 입 사이 공간을 두고 천천히 즐기며, 아이들을 대할 때도 공간을 두고 조금 더 아이 같은 시선으로,  이사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지럽게 널리 짐을 보면서도 공간을 두고 천천히 언젠가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야겠다. 욕심이 넘쳐 '공간'으로 흘러 들어와도 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해야 되는 것을 분별하며 공간을 지키는 공간 지킴이가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근은 어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