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Nov 16. 2022

내가 '장사의 신'을 낳았어!

어린이의 플리마켓 상점 첫 도전

  머리보다 더 적극적인 손가락은 때로는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마련해준다. 내 손가락은 '나'를 위한 일에서도 열일을 하지만 경쟁력이 아주 치열한 아이들의 '선착순 모집' 앞에서 가장 빛나는 만족을 안겨 준다. 9월의 어느 조용한 오전, 지역 내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어린이 셀러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심장은 '선착순'에 꽂혀 두근대고 있을 때, 머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어보고 신청할까?', '그것보다 그날 시간은 될까?' 생각하고 있었고, 손가락은 이미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빠른 손가락 덕분에 어린이 셀러 10팀 안에 들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첫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둥!


  약 2달 정도의 준비 기간이 주어졌지만 '아프고, 바쁘고, 이사를 하고'의 삼중고로 사업을 위한 회의를 할 시간조차 없었(거나 할 체력이 안 되었)다. 아무튼 시간은 흘렀고, 이제 D-1 요일이 되었다. 

  "엄마, 우리 내일 뭐 팔아?"

  "엄마가 지난번에 여름이와 겨울이에게 물어본 것으로 사놨는데... 우선 택배를 뜯어봐야 하는데..."

  어제까지 주문한 물건들이 모두 도착했고, 택배 박스를 열어야 하는데 새벽 요가에 다녀온 뒤 온몸이 나른하게 녹아 흐른다. 결국 뭐라도 챙겨 놓아야 했던 토요일 오전은 낮잠으로 보냈고, 오후에도 '애데렐라'(시간 맞춰 애 데리러 다녔어요.)와 '돌 밥'(돌아서면 밥 하는 시간이죠.)으로 동네 유치원생만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6시. 일요일 요가 수업은 7시 30분에 시작하지만 알람이 울리기도 전 눈이 떠졌다. 전날 일찍 자기도 했지만 '플리마켓 준비해야 되는데...' 하는 마음속 목소리가 완전한 기상을 일으켰다. 

  '오픈하는 날이 되어서야 오픈 준비를 하다니!' 이것은 게으름 때문인가 싶다가도 열심히 바쁘게 사는 날이 많으니 특유한 느긋함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주문한 책과 문구는 모두 잘 도착했고, 집에 있던 새 상품까지 챙기니 제법 즐거운 상점의 느낌이 났다. 아침으로 전날 만든 당근 수프를 함께 먹으며 가격을 정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격은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

  "난 알아, 내가 산 가격보다는 비싸게, 하지만 너무 비싸면 사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만 비싸게 팔아야 해."

  아홉 살인 겨울이의 대답은 놀라웠다. 왜냐하면 평소 우리 집 아이들의 소비 습관을 알기 때문이다. 6학년인 여름이는 물건을 살 때 요모조모 따져 보며 더 나은 소비를 하는 편이지만 겨울이는 마음의 끌림이 소비의 기준이기 때문에 '한탕주의'식 소비로 금방 빈 지갑이 되고 만다. 그런 겨울이가 판매자로서는 일확천금을 바라지는 않는 모양이다.

  '저 녀석을 돈을 펑펑 써서 어쩔고?' 싶었던 걱정이 조금 가셨다. 어쨌든 본능에 더 충실한 시선으로 돈을 대했던 겨울이는 이번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십 원에서 이천 원의 이익을 붙여 가격을 정하고 물품을 접이식 쇼핑카트에 실어 장터로 향했다. 


  "사람들의 이동 방향은 이렇게야. 우리는 어떻게 진열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올까?"

  "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지우개 뽑기와 젤리, 사탕을 (첫눈에 보이도록) 오른쪽에 배치하고 앞에는 팝업 그림책, 뒤에는 알록달록한 양말과 카드 같은 것을 놓자."

  이번에는 플리마켓이 처음인 엄마와 일어서야만 테이블 위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보이는 키 작은 겨울이 대신 여름이의 생각하는 두뇌가 우리의 믿을 구석이 되었다.  

아이들의 첫 경제활동, 상점의 진열은 여름이가 맡았다.


  물품 진열을 끝낸 뒤 사진을 찍고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 다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기 전 지우개 뽑기는 오른쪽 코너에, 풍선껌이 든 알록달록 솜사탕 색깔의 막대 사탕은 왼쪽 코너, 그 뒤에는 젤리를 놓았다. 그리고 영어 팝업 그림책과 귀여운 양말은 중앙으로 다시 배치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끝나고 행사는 아직 시작하기 전인 낯선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개막식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행사가 시작되었지만 찾는 이가 없을 때 상점 주인은 무엇부터 잘못되었나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 플리마켓의 운영과 결과는 아이들에게 다 맡기기로 했지만 계속해서 긴장된다는 seller에게 여유를 먼저 가르쳐야 했다. 그래서 아직은 한가하니 아이들에게 행사장 안에 있는 무료 체험 코너 중 제일 하고 싶은 거 한 가지를 골라 다녀오라고 했다. 상황을 바꿔 아이 스스로 긴장을 풀며 마음속에 여유 공간을 찾길 바랐다.

  

감동적인 개시 거래!

  

  11시 6분,  아이들이 만들기에 집중하는 사이 우리 상점도 드디어 개시했다. 하나에 오백 원짜리 지우개 두 개가 팔린 것이다. 5분 뒤 활동을 마친 아이들이 돌아왔고, 첫 판매로 얻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겨울이의 작은 가방에 넣어줬다. 

  "우리가 돈을 벌다니, 난 너무 신기하고 기뻐!"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하는가, 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지 아이들의 눈빛이 시작할 때와 달랐다. 그래서 아이들의 상점 운영을 믿고 커피를 한 잔 마시러 다녀왔다.


  "오늘 플리마켓에서 얼마를 벌고 싶어?"

  "나는 오늘 만 원만 벌었으면 좋겠어."

   커피를 마시러 간 사이 사탕과 지우개가 더 팔리고 작은 돈 가방에는 삼천 오백 원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는지 만 원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1시간이 안 되어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목표를 수정해 이번에는 삼만 원으로 정했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후가 되면서 오가면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행사가 시작된 지 2시간 만에 두 번째 목표도 달성했다. 


  "십만 원을 목표로 삼을 거야."

  아이가 삼만 원에서 십만 원으로 목표를 수정했을 때 내 머릿속은 계산을 하느라 바빴다. 지금 잘 팔리는 품목인 지우개와 사탕, 젤리가 완판이 된다면 사만 오천 원의 수입이 생기게 되다. 그럼 오만 오천 원을 더 벌기 위해서는 그림책 최소 두 권과 컵받침 만들기 키트와 양말을 다 팔아야 했다.

  "얘들아 머릿속으로 그려봐, 우리는 오늘 그림책 두 권을 꼭 팔 거야."

  그리고 우리가 한 말과 생각을 믿기로 했다.



  "겨울아, 조용할 때 조금 앉아 쉴래?"

  "아니야, 엄마. 내가 있어야 (물건이) 잘 팔리는 것 같아."

  춥고 다리도 아플 텐데 돈 가방을 허리에 차고 서 있는 겨울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상점 주인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기대에 가득 찬 아이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림책 두 권을 팔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했다. 비록 눈밭을 마음껏 구른 눈덩이처럼 큰 목표를 정했지만 '죽기 살기로'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버는 생각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책은 어떤 책이에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책 손님이 오셨다. 엄마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아빠는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손들고 다니는, 올해 탄생한 '신상' 가족이 온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몇 번이고 사준 적이 있는 팝업책으로 골라왔어요. 이 책은 수면 교육할 때 참 좋았고요, 이 책들은 겨울 시즌이라서 아이와 함께 읽기 좋아요. 팝업책이라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놀라운 상상력을 자극해요. 특히 이 책을 멜로디까지 나와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랍니다."

  책을 한 권씩 꺼내 보여 드리며 큐레이팅을 한 이유를 경험과 함께 '물 흐르듯'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말을 술술 잘했던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권 다 사자."

  아이보다 더 큰 기저귀 가방을 든 아빠가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가방을 들고 따라다니는 쇼핑에 지친 남자의 모습과 말투가 아니었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그림책 두 권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한 권까지 모두 세 권이 책이 우리 상점을 떠나 사랑받는 책으로 살기 위해 나섰다.


  네 시가 넘어서자 파장 분위기가 몰려왔다. 이미 정리하고 마감한 상점도 있었고, 다른 곳들도 정리 중이었다. 

  "겨울아, 우리 얼마 벌었어?"

  "와, 겨울이 장산의 신이네, 장사의 신!"

  가방을 열어 번 돈을 보여주는 겨울이의 표정이 마스크를 뚫고 나온 것 같았다. 분명 겨울이의 콧구멍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벌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겨울이의 행사가 곧 끝나니 정리해 달라는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돈 가방을 허리에 두르고 서서 상점을 지켰다.



  저녁을 먹고 오고 싶었지만 얼른 집에 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곧장 집으로 왔다. 거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쏟으니 이만큼이나 쏟아졌다. 정확히 103,500원이었다. 행사장을 나오기 전 풍선아트 코너에 가서 하트 풍선을 하나씩 산다고 천 원을 썼으니 우리가 오늘 플리마켓에서 번 돈은 104,500원이었다. 첫 경험의 결과물은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얘들아, 여기에서 우리가 판매한 물건을 사는데 쓴 돈을 빼야 우리의 진짜 수익, 순수익이 되는 거야."

  하지만 이번 플리마켓은 순수익이 아니라 수입을 아이들에게 주기로 약속을 했다. 스스로 번 돈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액면가치 이상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번 플리마켓을 통해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이전 08화 저녁 밥상은 분업과 협업의 결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