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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02. 2023

마법의 양송이 감자 수프

자기애로 가득 찬 나의 수프 일기

양송이 감자 수프 @무지개인간


  나의 부엌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수프이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사 온 신선한 양송이버섯 한 팩을 정리해서 대강 썰고, 제주에서 난 작은 햇감자도 큼지막하게 썬다. 깊은 냄비를 꺼내 버터를 두르고, 양송이버섯과 감자를 넣어 볶는 일부터 시작한다.


  '양파가 있으면 좋겠는데...'

  양파가 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참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드는 게 엄마표 요리이다. 게다가 재료가 없어도 어쨌든 만들어 내는 것은 용감한 엄마의 경력이고.

  그래도 '양파를 잘 볶으면 수프의 맛이 깊고 진해진다.'는 한 줄의 요리 팁이 자꾸만 눈에 걸리는 새벽이다.


  양송이버섯과 감자가 버터 향을 머금으면 이제 생크림을 넣고 계속 저으면 된다. 등나무로 만든 조리 스푼을 들고, 냄비 속을 무대 삼아 손목을 마치 피겨 요정처럼 연기를 펼치다 보면 둥글게 둥글게 젓는 손목 스냅 사이로 양송이버섯 향이 퍼진다. 소금과 후추로 알맞게 간을 하고 가스 불을 내린다.


  특히 나는 모짜렐라를 넣어 마무리한 고소하고도 걸쭉한 수프를 아주 좋아하는데, 마침 모짜렐라 치즈가 냉장고에 있어 그것도 함께 넣어주었다.


세상에!
내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그 맛을 우리 집 식탁에 차려내다니!



  수프 한 스푼을 떠 입 안에 넣을 때마다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식 중에서 내 손으로 만든 수프는 정말이지 경이롭다. 왜냐하면 어떤 식당에서 맛본 수프보다 진하고 맛있다. 나도 놀랄 정도로!


  내가 어릴 때 맛본 수프는 오뚜기에서 나온 가루로 물에 풀어 끓으면 완성되는 수프가 다였다. 더 맛있게 먹으면 후추를 아낌없이 뿌려주면 더 맛있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수프는 처음으로 마트에서 즉석 수프를 샀을 때였다.

  '마트에서 파는 즉석식품이 거기서 거기지. 뭐 별 거 있겠어?'

  별 기대 없이 산 수프는 깊고 풍부한 맛으로 내 생각을 바뀌어 놓았다. 레스토랑에서 식전에 나오는 수프와 비교해 마트에 파는 수프는 가성비가 아주 좋은 한 끼가 되었다.


  이제는 마트에 파는 가루 수프나 레토르트 수프가 아니라도 혼자의 힘으로 아주 맛있고, 근사한 수프를 만들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글로 배운 레시피 덕분에 내 수프를 맛본 식구들은 "따봉!"을 외친다. 게다가 우리 집 식구들에게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수프의 맛있는 기준은 모두 나의 수프이다. 더 어깨가 봉긋 솟는 것은 아직까지 내가 만든 수프를 넘어서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물론 간혹 아주 손맛이 좋은 셰프의 수프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빅사이즈 국그릇에 가득 담아주고, 기본 2그릇이 제공되는 엄마표 수프에 양적(量的)으로 밀리기도 한다.


  오늘 우리 집 아침 식탁은 따뜻한 수프 한 사발 속에 나의 자신감을 솔솔 뿌려 준비했다.

  식탁에 마주 앉은 나의 사랑,  이 수프를 먹으면 엄지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번쩍 세워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두 눈은 하트를 발사할 수 있으니 후후 불어서 먹길, 첫 한 입의 반응이 수프를 다시 식탁 위에서 만날 날을 가깝게 또는 멀게 할 수 있으니 '신경 써서' 나의 자신감도 계속 채워주길 바라.




   


  글로 배운 요리도 어깨춤을 추게 합니다. 수프는 만들 때마다 참 멋진 선물을 안겨줘요.

  비트와 당근을 넣어 만든 수프도 참 맛있었는데, 양송이와 제주산 햇감자로 만든 수프도 맛있어요. 이 맛에 설거지거리도 많고, 번거롭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수프를 만들게 됩니다.

   

  새벽부터 수프를 만들다니 되게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귀차니즘이 일상입니다.

    ->   비 오는 날은 머리를 감기 싫습니다. (brunch.co.kr)  


  보통의 날 아침의 일상은 이렇습니다.

    ->  오늘도 나는 친절을 마셨다. (brunch.co.kr)


   얼마 전에 쓴 글이 브런치스토리 인기 글에 오늘 아침부터 올라가 있네요.

    ->  돈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 (brunch.co.kr)


  매일 무지개인(공)간에 오셔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다정한 독자님의 일상에 원래 생길 행복한 일에 즐거운 일이 하나씩 더 생기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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