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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May 30. 2023

들기름 막국수 먹는 아이와 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가 빠졌군요

  요즘 초3학년이 된 겨울이는 식욕이 왕성하다. 잠들기 직전에 내일 아침에 삼겹살을 잔뜩 썰어 넣은 콩나물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침밥을 먹으며 "점심 메뉴는 돈가스 어때?"하고 묻기도 한다. 여하튼 겨울이의 다음 끼니에 대한 계획은 식사 메뉴를 정하는 내 노고를 덜어줄 때가 많다.


  "엄마! 내일 아침에 들기름 막국수 해줄 수 있어?"

  "그럼!"


  내키지는 않지만 상냥하게 승낙했다.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하면 삐지기 때문이다. 

  (내 몸이 체력 발전소라면 마흔이 되어서는 체력 생산량이 아주 바닥이다. 게다가 잦은 방전으로 툭하면 침대에 누워 있는 날이 잦다. 그래서 요즘은 하늘이 무너질 정도가 아닌 일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먹기 직전'에 준비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 국수이기에 여유로운 아침이다. 열린 창문 틈으로 빗소리가 들어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어우러진다.

 


  아침 메뉴인 들기름 막국수는 풍국면에서 준비해 주셨고, 나는 '이런 것도 팔아주셔서 고맙습니다'는 의미를 담아 돈을 드렸다. 이제 손품을 넣어 식탁에 올릴 예정이다. 

  (오뚜기에서 나온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이 더 맛있지만 마트에서 사기 편한 것은 풍국면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 때는 ③이라고 적힌 김가루 소스를 뜯어보자. 끝없이 쏟아지는 김가루를 보며 풍국면의 소비자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막국수는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아낸 면처럼 삶는 것도 참 거칠다. 한 눈을 팔면 금방 끓어 넘쳐 잠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초 단위로 끓어 넘치려고 할 때 긴 나무젓가락을 가져와 냄비 위에 가지런치 올려두었다. 끓어 오른 거품이 열전도율이 낮은 나무젓가락에 닿으면 식어서 덜 넘친다고 한다. 다행히 연휴 동안 지문이 닿도록 닦아 둔 가스레인지를 지켰다.



  끓는 물에서 4분, 이제 찬물 샤워의 시간이다.



  아침부터 빈 속에 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오늘은 모닝커피가 마시고 싶다. 면들이 찬물 샤워를 하는 동안 원두는 온수 샤워를 한다.

    


  완성! 자, 이제 먹자!




  저는 밥을 좋아해요. 어릴 적 매일 아침 엄마의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압력밥솥의 추 돌아가는 소리가 저의 알람 소리였어요. 매일 아침마다 갓 지은 밥을 해주신 엄마가 참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에게 국수는 어쩌다 주말 점심에 먹는 특별한 메뉴였답니다. 물론 점심으로 국수를 다 먹은 후 국물에 밥을 말아서 총각김치나 배추김치를 척 올려 먹어야 식사의 완성이었죠.


  반면에 남편은 국수를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딱히 생각나는 메뉴가 없으면 무조건 국수였어요. 엄마표 칼국수와 김치말이 소면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국수도 종류가 엄청 많더라고요. 참 많은 종류의 국수를 먹어보았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국수를 먹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네요.

  10살 아이 덕분에 아침 식사는 무조건 밥이지,라는 생각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러게요. 빵도 되고, 커피도 되면서 왜 국수는 금방 배가 꺼지니 안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비 내리는 아침, 음악과 빗소리를 고루 섞듯 국수를 삶아 들기름과 김가루, 통참깨를 잘 버무려 보세요.

  맛있는 아침이 될 것입니다.



  다정한 독자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제 의식의 흐름대로(^^) 독자님을 위한 <추천 글>을 올려 드려요.


  하늘이 무너질 뻔했어요. ->  부동산으로 3억을 날려 먹었다 (brunch.co.kr)


  엉뚱한 제 모습이 여기 있네요. -> 요가를 등록했는데 (brunch.co.kr)


  잔잔한 제주의 일상 이야기입니다. -> 삶을 정성껏 (brunch.co.kr)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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