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인간아, 집에 가기 전에 꼭 내 얼굴 보고 가."
"응, 지금 갈게요."
지금 제가 모는 차의 목적지는 그녀의 품입니다.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어요. 무슨 일일까, 할 말이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말이죠. 몇 분 뒤 만난 그녀는 품에 종이가방을 안고 있었어요.
"이거 집에 가서 먹어. 우리 텃밭에서 기른 건데 오늘 솎았어."
"앗, 여린 상추! 이거 진짜 맛있는 건데, 오늘 저녁에 삼겹살부터 구워야겠다."
"그렇지? 나도 대패 삼겹살 사놓고 나왔어."
"고마워요, 언니!"
그녀는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 동네 언니입니다. 지난 4월에도 그녀의 마당에서 쑥쑥 올라오는 자연산 달래를 뽑아와 달래 된장국과 달래간장을 만들어 맛있는 봄 식탁을 차린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그녀가 모종을 심어 가꾼 텃밭 상추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덕분에 오늘 저녁상도 푸짐해질 것 같아요.
소낙비가 내렸지만 하나로마트에 들러 제주 오겹살을 샀어요. 쌈장도 사고요. 제주도민이라면 멜젓에 저민 마늘과 소주를 조금 붓고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야겠지만 몇 달째 자꾸 깜빡해서 못 먹은 쌈장이 오늘은 더 끌리네요. 로컬푸드코너에는 제주산 제철 식재료를 만날 수 있어요. 대정에서 나온 마늘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전에 냉장고를 정리한 게 생각나 내려놓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쌈채소인 당귀도 마지막 한 봉지가 남아 있었지만 언니네 텃밭에서 나온 넉넉한 상추가 떠올라 고이 내려놓았지요. 맛있는 저녁 한 끼 재료를 준비해 이제 집으로 갑니다.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저녁 준비 시간이 겹치는 날은 늘 손이 바쁩니다. 아, 생각해 보니 평일에도 퇴근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이 겹쳐 정신이 없었네요. 365일 중 300일은 정신이 없는, 저녁 있는 삶을 보내고 있었네요. 아무튼 외출할 때 들고나갔던 에코백부터 정리하고 언니의 종이가방을 확인했어요. 여러 종류의 상추가 폭신폭신하게 자고 있더라고요. 상추가 fresh해지도록 찬물을 틀어 상추를 씻어 줍니다. 양이 많아 두 손을 넣어 세 번을 꺼냈어요.
흐르는 물에 상추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있으니 언니의 텃밭이 부러워집니다.
'나도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게으른 텃밭 주인이 조금 늦게 솎아줘도 무성하게 자라 줄, 더 좋은 비료가 뭐가 있나 고민만 하다 결국 때를 놓칠 주인을 만나 물만 먹지만 풍성하게 새 잎을 낼, 아침과 저녁으로 밥상을 넉넉하게 채워 줄 그런 마음씨 넓은 텃밭 채소가 사는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씻은 상추를 다시 물에 담가 미처 털어내지 못한 흙을 씻어내고 잎을 정리해 가지런히 담아냅니다. 채반에 담긴 상추들이 꽃잎처럼 예쁘네요. 게다가 언니가 농약도 한 번 안 치고 정성으로 키운 상추라 꽃보다 더 예쁘게 보입니다. 상추를 옆에 두고 이제 제주 오겹살을 꺼내 달군 팬 위에 한 줄씩 올립니다. 연한 상추에 쌈장을 푹 찍은 오겹살을 올려 먹는 쌈은 얼마나 맛있을까요.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에 군침이 고입니다.
상추 부자는 상추를 5장씩 깔고 쌈을 싸서 먹었습니다.
역시! 텃밭의 상추는 먹을 때 가장 행복해지는군요!
그런데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대신 텃밭이 있는 언니들이 옆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로 바뀌었습니다. 언니들의 텃밭 농사가 올해도 풍년이길 빌어봅니다.
브라보! 언니들의 텃밭!
다정한 독자님, 안녕하세요.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작년 가을까지 살았던 타운하우스에는 마당이 있었어요. 봄이 되면 동네 언니가 양배추 모종과 수국을 심어주고는 했어요. 작은 텃밭이라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더라고요. 양배추 잎을 먹어본 적은 없네요. 저는 '흙이 좋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양배추는 매번 억울하다고 했겠죠?
제주에 사는 언니들의 텃밭에서는 사계절 내내 맛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고맙다는 인사로 정성의 산물을 받지만 사실 고마운 마음 이상의 따뜻한 애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언니의 텃밭에 초대받은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세요. 이날도 마음이 참 따뜻해진 날이었습니다.
삶을 정성껏 (brunch.co.kr)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