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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May 27. 2023

돈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

  부동산으로 3억을 잃게 된 사건의 흐름은 이렇다.

  전세 만기일을 6개월 앞두고 현 세입자는 만기일까지만 살고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계약을 중개해 준 부동산 사무실로 연락을 해 일정을 논의했다. 소장님은 내년 2월이 만기이니 12월 초부터 전세 광고를 내자고 했고, 1월 중순쯤 부족한 금액만큼 대출을 받으면 되겠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12월의 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더 나빠졌고, 이미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12월의 마지막 날, 소장님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전세가가 1억 8천밖에 안 되겠는데요?”

  ‘뭐라고? 내가 뭘 들은 거지? 얼마라고?’

  당시 세입자는 보증금 4억 2천만 원에 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가 떨어진 건지 계산도 하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소장님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유명한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앞에서 1시간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장 난 뇌에 아무리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보여준다고 해도 제정신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아쉽지만 미술관 입장을 코앞에 두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역전세난’이 내 일이 된 것이다.

  ‘그러게, 왜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나에게는 한 달 뒤 현금 4억 2천만 원이 필요했다. 지금이라도 담보대출 2억 7천만 원을 받으면 현금은 1억 5천만 원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에, 만약에, 정말 만약에’ 기적처럼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그래도 좌절부터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세입자가 들어오고 담보대출을 일으키면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월세로 들어올 세입자를 다시 구해보려고 이틀을 매달렸다. 그러나(다행히) 정신머리가 이틀 뒤에는 돌아온 덕에 금융기관에 담보대출이 있는, 게다가 현재 전세 시세를 훨씬 넘어서는 담보 비율로 담보 설정이 된 부동산에는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장을 바꿔보면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에 눌려 생각할 여유를 완전히 잃었던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거래하던 부동산 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몇 년을 봤던 사이니 인간적으로 살려달라고 부탁이라고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내가 전화를 하면 음성 사서함의 기계음만 나올 뿐, 골치 아픈 일이 되어가니 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부동산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실패, 어려움, 경제난, 경매 등등 떠오르는 단어들을 구구절절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소장님, 이 아파트는 가을부터 매매 거래는 아예 없어요. 지금은 전세가가 3주 만에 5천만 원이나 떨어졌더라고요. 만약 새로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고 해도 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드리려면 당장 한 달 안에 2억이 넘는 돈이 필요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까 방법이 없어요. 어디서 돈을 빌려요. 어떻게든 빌려서 우선 세입자 전세보증금부터 정리해 드리고, 그다음에 월세를 놓는 게 지금은 제일 좋은 방법 같아요. 3년만 있으면 분명히 샀을 때 가격을 회복해요.”

  ‘아, 그렇지!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구나!’

  한 달도 남지 않는 시간이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4억 2천만 원을 구하면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우선 아파트 담보대출을 최대치로 받고, 나머지 돈은 구해보기로 했다. 신용대출은 직장인이 아니면 현재는 취급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2023년 1월 기준) 직장인이 아니면 대출이 된다 해도 너무 소액이라 이 금액으로는 큰 불을 끌 수가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부탁한 적이 없는 돈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꺼내 보기로 했다.

  “정말 정말 미안한데, 혹시 여유 자금이 있으면...”

  딱 하루를 그렇게 살았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날, 무척 괴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여러 명에게 말할 용기도 없었고, 어렵게 말을 꺼내도 그렇게 큰돈을 무작정 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희망을 기대했던 사람은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해 준 사람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 연락이 없었지만 말이다. 0.000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붙잡고 싶었던 급한 마음이 밤이 깊어지자 서운한 감정으로 불쑥 올라왔다.     

  겨우 잠을 청하고 날이 밝았지만, 상황은 같았다. 좋은 날이 이어질 때는 날마다 새로운 해가 뜨고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는 것 같더니, 어제도 오늘도 같은 문제를 껴안은 채 똑같은 하루가 계속되었다. 시간이 흘러 들추어 보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지만)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낸 내가 가장 큰 잘못이었다. 서운함과 미안함으로 내 마음이 얼룩진 것처럼 지인의 마음도 만개의 감정으로 뒤범벅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돈을 잃고 사람도 잃고, 그렇게 다시 시작해야 했다.




  브런치북으로 엮을 글을 연재하고 있어요.

  첫 번째 글은 부동산으로 3억을 날려 먹었다 (brunch.co.kr) 입니다.

  두 번째 글은 예고편은 찬란했다. (brunch.co.kr) 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 번째 글을 올렸고요.


  빛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장 어두운 때에 쓴 글입니다. 그리고 글을 쓴 덕분에 조금 생각보다 빨리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요. 지난 1월에 쓴 이 글을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공감해 주신 다정한 독자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제 삶을 채워주신 많은 분들의 마음이 가장 힘든 순간에 빛을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삶에서는 저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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