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오르는 부동산 시장은 일본 여행에서 보았던 활어 경매 시장과 비슷했다. 싱싱하고 매력적인 물고기는 사고 싶은 사람들이 넘쳤다. 그리고 비쌌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하면 오늘은 싼 편이었다. 몇 개월 동안 미친 듯이 오르는 부동산 매매가격을 보며 나는 착각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은 비싼 것처럼 보여도 분명 내일은 더 올라갈 거야.’
늪에서는 발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곳이 어딘지 몰랐던 나는 내일이 오면 ‘오늘은 잘 산 편’이라며 승리의 야호를 외치며 뛰어올랐다.
상품(上品)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현금 범위 내에서 활어 한 마리를 샀다. 층수, 집의 상태는 최상급(最上級)이었다. 비록 바랐던 위치는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나도 물고기를 들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한 마음을 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든든한 물고기는 정부의 정책 변화, 시장 분위기로 인해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비록 계획에는 없던 것이지만 미리 마음을 졸일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괜찮았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물고기를 다시 팔 때의 상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조급해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물고기와 함께 나 역시 심해로 빠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역전세 난을 맞기 전,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줄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때가 있었다. 바로 시간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앞으로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침부터 든 놀라운 생각을 기록해야겠다고 남겨두었다.
<2022년 11월 28일>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러니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늘 아침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의지로 미래의 시간이 마련해 둔 공간에 먼저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물꼬가 트이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삶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결정된 미래의 삶이 운명이라며 나를 열렬히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에는 며칠 간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때’라는 시공간이 나에게 열심히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낸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미 마련되어 있는 내 삶이 ‘안녕! 널 기다렸어.’하며 손을 내미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을 받아들이는 삶, 한편으로는 수동적인 삶이다. 동시에 최선을 다하고,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만 닿는 수 있기에 나의 의지에 따라 도착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이기도 하다. 결국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에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12월 3일>
결국 그 생각이 맞았다.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되 노력은 멈추지 않았더니 결국 그 ‘때’가 왔다. 이틀 동안 갑자기 닫힌 인스타그램 계정이 오늘 새벽에 다시 열렸다. 물론 아주 작은 일이지만 더 큰 일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큰일이 생기더라도 여유롭자.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는 '그 순간'은 온다.
브런치스토리에 이 글을 적고 한 달 후, 나는 정말 큰 일을 겪었다. 당시에 나는 이 일을 겪게 될 것을 알지 못했지만, 삶은 내가 반드시 겪고,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삶이 이끄는 방향을 신뢰한다.)
12월 초까지만 해도 그나마 나쁘지 않았던 부동산 시장이 또 급락을 하며 3주 만에 완전히 얼어붙은 것이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내주려면 그만큼의 금액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만 넘기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장 상황도 내 주머니의 사정도 많이 어려웠다. 우선 한 달 전에 비해 내가 내줘야 하는 돈이 2배나 불어있었다. 게다가 처음 이야기가 나온 3주 전에는 시간적인 여유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다. 추가 대출은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0.1%라도 희망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든 듣고, 해봐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늘구멍만 한 틈만 있으면 그 사이에 긍정적인 시선을 후, 불어넣어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일은 해결하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지.’라는 생각에는 먹구름이 가득 찼다. 잘 될 거라는 희망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는 긍정만으로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가 필요했다.
+ 다정한 독자님,
2023년 새해부터 기쁘지 않은 일로 한 해를 시작했어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2주 동안 '살기 위해' 많은 글을 썼어요.
그때의 기록과 과정을 정리해 출판사에 투고를 준비하며, 먼저 브런치북으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그때의 생각은 지금의 삶을 열어 준 소중한 기록이라 가급적 수정하지 않고 브런치 스토리에 올릴 예정입니다.
처음으로 올린 글(부동산으로 3억을 날려 먹었다 (brunch.co.kr) )이 예상치 못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감추고 싶었던 저의 실패에 조언과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정한 독자님의 앞날이 눈부시길 두 손 모아 봅니다.
삶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