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물건 중에 내가 어릴 적 학교 다니며 받은 상장들이 몇 개 있다. 그중에 개근상은 당시 학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 보고 몇 개씩 보관할 것이다. 그땐 학교 안 빠지고 개근하는 게 미덕이었고,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하나의 지표였다. 학교는 당연히 가는 곳이었다. 아파도 갔고 비가 많이 와도, 눈이 많이 와도 헤치고 다녔다. 그리고 개근상을 탔다. 요즘엔 ‘개근 거지’라는 믿지 못할 말도 생겼다고 한다. 학교에 빠진다고 해서 큰일 나기는커녕 오히려 가끔 빠져 줘야 ‘제대로’ 사는 아이라고 봐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엔 아직 ‘개근 거지’같은 문화는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여행 핑계로 결석도 해줘야 할 것 같아 종종 가족 여행을 가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 안 갔다. 전날 밤에 갑자기 내일 하루만 쉬고 싶은데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단 그러라고 했다. 혼내고 억지로 보내면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서 동의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급격하게 말 수도 줄어들고 방문 닫고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져 걱정했는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됐다.
아이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전화로 오늘 결석하게 됐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은 최근에 국어 시간 모둠 활동 시간에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던 일과, 청소 담당 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셨다고 한다. 아무튼 옛날 생각하니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했다. 아이가 나약하고 의지가 약해 빠졌다는 비난 섞인 생각만 들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무작정 혼내고 화내서 다음에 절대 그런 생각 못 하도록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차분히 달래야 하나. 아이 키우는 게 정말 힘든 일이란 걸 아이가 클수록 깨닫는다. 아기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중학교 이후로는 정신적으로 힘들다.
퇴근 후 아이를 불러서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으니 좋더냐고 물어보니 늦잠 자서 좋았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학교에서 모둠활동과 청소 문제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나름 억울한 사정을 말한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위한 준비 단계이니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일러뒀다. 공부하라는 말은 안 하겠으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 줄이고 하루에 30분씩 책 읽으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말을 하면서도 괜찮은 말인지 확신은 없다.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얘기를 마치니 방에 들어간다. 엄마가 불러내 밥을 먹이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조잘조잘 얘기한다. 시무룩해 있거나 반항심에 문 닫고 들어가 안 나오는 장면도 상상했는데 엄마와 잘 얘기하는 모습에 마음 놓인다. 아침에 화났단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학교 하루 빠진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닌데 화내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나도 가끔 연차 쓰고 회사 쉬지 않나. 어떤 날은 간절히 회사 안 가고 싶은 날도 있지 않나. 아이라고 그런 날이 없겠나 싶었다. 건강하면 됐지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존재만으로 감사한 것 아닌가. 그런 일로 화내거나 힘들어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