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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관성에서 벗어나기

by 혼란스러워

7월 1일부터 여섯 시에 퇴근하도록 바뀐 회사 방침에 따라 우린 처음이니까 칼같이 퇴근하자며 6시 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창 해가 긴 계절이라 여섯 시에만 나가도 대낮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오랜만에 그 시간에 나가니 지하철이 콩나물시루 같다는 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난 교대역 3호선을 타고 양재에 가서 신분당선으로 환승, 정자나 미금역에서 수인 분당선을 타고 신갈역까지 간다. 거리는 멀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10분이면 충분하다. 아무튼, 첫날 여섯 시에 퇴근했다가 신분당선에서 막혀버렸다.


차가 왔지만 내 앞에 줄 선 사람까지 타고나니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어 내가 포기하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가 탔다. 다음 차도 붐비긴 마찬가지였다. 간신히 몸을 끼워 넣고 약 17분간을 버티다 미금역에서 내려서 수인 분당선으로 갈아탔다. 일찍 퇴근해서 기분은 좋았지만 일곱 시 퇴근 때와는 차원이 다른 혼잡함을 경험하고 나니 몸이 더 피곤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땀에 전 사람들은 최대한 몸을 움츠려 옆 사람과 닿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역마다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 그런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서로의 체온이 더해져 냉방 장치를 풀가동하고 있다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GTX 타면 될 텐데.” 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한 마디 툭 던졌다. 교통망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새로 생긴 도로나 철도 노선 현황을 꿰고 있다. 아들 생각엔 GTX 타면 쾌적하고 편하게 올 텐데 내가 고지식해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노선이 생긴 건 알았지만 그걸 타고 출퇴근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얼핏 듣기로 요금도 비싸고, 환승하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며 배차 간격이 길다고 했고, 환승할 수 있는 역이 수서역인데 수서역에서 내가 일하는 교대역까지 3호선으로 9개 역 정도 되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관성이다. 패턴을 바꾸지 않으려는 습성. 굳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보려 노력도 하지 않는 습성. 예전 같으면 아들의 말을 무시했을 텐데 호기심이 생겼다. 매일 반복되는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뚫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다니는 길 말고 새로운 길로 다니는 게 뇌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다. 요금을 찾아보니 내가 평소 이용하는 노선 보다 천 원 정도 더 비쌌다. 매일 이용하는 건 아닐 테니 크게 부담 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제 퇴근길에 시도해 보기로 하고 교대역에서 3호선을 타고 수서까지 갔다. 그 방향은 퇴근 시간에도 심하게 혼잡하지 않아서 편했다. 수서역에서 동탄행 GTX를 기다렸다가 탔다. 생각보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자리가 텅텅 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차 안은 쾌적했고 속도는 빨랐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성남역이라는 안내가 나오더니 곧 목적지인 구성역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14분. 놀라웠다. 수서역에서 구성역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구성역에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전체 시간은 평소에 비해 약간 줄어든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오지 않으니 훨씬 덜 피곤했다.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도 그 노선을 이용했다. 수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했는데 자리가 많았다. 신세계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하는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 방법 저 방법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는 거다. 길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방식이 그렇다. 새로운 방식을 찾아 시도해 보면 삶이 좀 더 다채로울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아들의 의견이라도 경청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꼰대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는 게 꼰대다. 더 좋은 다른 방식이 있을 텐데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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