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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꼰대의 양말

by 혼란스러워

김진호는 우리 회사 총무팀 팀장이다. 이 회사에 16년째 일하고 있는 찐 고인 물이다. 난 3년 전에 이 회사로 이직했고 업무 관련성이 거의 없는 그와는 호형호제하며 편하게 지낸다. 진호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리지만 하는 행동은 훨씬 나이 많은 사람 같아 보이는 ‘꼰대’ 스타일이다. 며칠 전엔 식당에서 전산팀에 근무하는 한 대리를 만났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김진호가 그의 반바지를 바라보며 “와. 시원해 보인다.” 하니 한 대리는 피식 웃으며 “왜요 또 지적하시게요?”라고 말했다.


얼마 후 김진호가 나에게 자기는 그저 부럽다고 말하려 했을 뿐인데 한 대리가 지적하려고 하냐는 말을 했다면서 자기가 그런 이미지로 정말 찍힌 것 같다고 했다. 난 진호에게 평소 얼마나 지적질을 하고 다녔으면 그러겠냐고 이젠 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물론 반 농담조였다. 그는 이메일이나 메시지보다는 전화 통화를 좋아한다. 아침 일찍부터 줄기차게 통화를 한다. 거래처나 협력업체 직원들과 필요 이상으로 통화를 많이 한다.


그는 일은 무척 열심히 한다. 배울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지적질이다. 지나가다가 자기 기준에 조금만 벗어난 것만 보면 잔소리를 해댄다. 나에게도 가끔 잔소리를 한다. 비록 장난식이지만 가끔은 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자신은 늘 맞고 다른 사람은 늘 틀리다는 그의 태도가 불편할 때도 많다, 내가 그 녀석의 직속 후임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처음엔 적응 안 됐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오늘 점심 먹고 잠시 걷는데 진호가 땀을 뻘뻘 흘렸다. 평소에도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에 특히 힘들어했다. 재밌는 점은 그가 추위도 많이 탄다는 점이다. 겨울엔 하루 종일 춥다는 소릴 입에 달고 살았다. 전에 없이 더운 날씨에 길에 사람도 평소보다 적어 보였다. 아무튼 오늘도 조금 걸었는데 땀을 흘리며 안 되겠다며 얼른 들어가자고 했다. 통 넓은 청바지를 입었는데 양손으로 바지를 조금 끌어올려 발목이 보이게 하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발목을 보니 두꺼운 하얀색 스포츠 양말이 발목 위까지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야 더위도 많이 타면서 양말은 왜 그래. 덧신 양말 같은 거로 신어.”난 내 바지를 올려 복숭아뼈가 다 드러난 내 발을 보여줬다. “아.. 좀 불편해서요.”, “잘 벗겨져서? 잘 고르면 짱짱하니 잘 안 벗겨지는 거 많은데. 그 양말은 너무 더워 보인다.” 내가 본의 아니게 지적 대장에게 지적질을 했다. 약간의 쾌감도 느꼈다.


만약 반대 상황이라면 그 녀석은 나에게 아저씨 취급하며 엄청 지적을 했을 거다. 늘 자신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면 자신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성경 말씀에도 있지 않은가. 타인 눈에 티끌은 보고 자기 눈에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이 볼 땐 김진호의 그 두꺼운 양말은 너무 답답하고 더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양말을 신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진호야 다른 사람들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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