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동네에 12년 전에 이사 왔다. 연고도 없을뿐더러 온통 아파트뿐이다 보니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런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이 생기게 된 건 교회 덕분이다. 우리 교회는 목장예배가 활성화되어 있다. 목장예배는 세 가정 내지 여섯 가정 정도가 한 목장을 이루어 매주 돌아가면서 각 가정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간단히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내가 속하게 된 목장은 구성원들의 나이대도 비슷하고 자녀들의 나이대도 비슷해서 금방 가까워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다들 배려하고 이해하며 큰 무리 없이 지금까지 목장 예배를 이어 오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중 한 가정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1년 전에 이탈했다는 점이다. 우리 멤버는 모두 그 가정이 돌아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 가정에 더 애착이 있는 건 남편이 나와 동갑이고 고향도 같기 때문이다. 일단 나이가 같으니 더 친근해졌고, 금방 말을 트고 지냈다. 그 친구나 나나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다. 교회엔 잘 나오지 않는 그를 난 '서집사'라고 불렀다. 옛날에 어른들이 마땅한 호칭이 없을 때 '김 선생', '김 박사', '김 프로' 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사석에선 친구처럼 지냈다. 하루는 내가 볼일이 있어서 연차 휴가를 쓰고 동네에 다니다가 그 친구의 아내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났는데 조금 있다가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 “나? 나 지금 000 앞인데? 소식 빠르네? 나 봤다는 얘기 듣고 전화했구나?”, “오늘 뭐 하냐?”, “오늘? 뭐 하긴. 볼일 보고 너 만나서 같이 저녁 먹어야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서 이런 순발력이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가끔 튀어나오는 내 센스에 나도 놀란다. 하지만 아주 가끔이란 게 문제다. 아무튼, 그 친구도 내 얘길 듣고 기분이 좋았는지 목소리가 밝아졌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키가 훤칠하고 호리호리하며 피부는 까무잡잡한 그 친구는 ‘멋진 해병’이다. 해병대 출신답게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다부진 몸을 유지하고 있다. 서집사는 외모는 '나 해병대요'하는 분위기지만 성격은 온순해서 늘 미소를 짓고 말투도 나긋나긋하다. 추진력과 의지가 강해서 갑자기 자기 전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공부를 시작하더니 독학으로 1년 만에 합격했다.
일 할 땐 매일 새벽에 나가서 밥 늦게 들어오고, 주말도 없이 일하던 친구였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 친구의 그런 면, 남자답고 강해 보이고 부지런하며 추진력 강한 모습을 난 좋아하는 것 같다. 무엇 보다 그냥 동갑이니까 편하다. 태어나 자란 환경과 학교, 군대 모든 게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날 오랜만에 서집사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으며 맥주도 간단히 한잔 하며 회포를 풀었다. 잠시 사정이 있어서 공백기를 갖고 있는 그 친구는 연락하고 싶어도 내가 피곤할 까봐 주저한다고 했다. 풍기는 이미지와 다르게 너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나도 생각은 자주 하지만 살다 보니 자주 연락을 못했다.
가까이 있는 친구와 가끔 만나 차라도 한 잔 하고 살면 좋으련만 뭐가 그리 바쁜지. 나이도 같고 비슷한 나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고민도 비슷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걸 서로의 표정과 눈빛으로 확인했다. 어느새 오십이 된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세월을 느낀다. 친구야 건강하게 나이 먹으며 자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