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야구 중계 보는 걸 싫어했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큰형이 주말에 야구 중계를 보는 동안 다른 채널을 선택할 권리가 박탈당했으며, 그 따분한 걸 몇 시간 동안 왜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내 고향이 연고지인 한화 이글스 팀을 응원하며 야구 중계를 챙겨 본다. 라이브 중계를 보는 건 가끔이고 주로 하이라이트 영상을 본다. 그것도 점수가 많이 나며 이긴 날 영상 위주로 본다. 뭐니 뭐니 해도 야구는 홈런도 시원하게 나오고, 안타도 많이 나와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한화 이글스 팀이 14점을 내며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영상이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주요 장면 영상으로 잠시 야구를 즐겼다. 350밀리리터짜리 작은 캔 맥주 하나 마시며 보면 굳이 야구장 가지 않아도 나름 야구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내 소중한 시간을 서너 시간에 달하는 야구 경기를 보며 보낼 수는 없기에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득점 장면이나 실점 장면, 멋진 수비나 실수하는 장면 등만 추려서 편집한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보는 게 내가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다.
평소와 같이 한화 이글스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본 후 문득 내 인생을 이렇게 주요 장면만 추려서 짧은 영상으로 만들면 어떤 내용이 될지 궁금해졌다. 점차 사라져 가는 어릴 적 기억을 살려내 주요 장면을 추리고, 자른 후 잇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태어날 때, 처음 학교에 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졸업식 하고, 상장을 받고,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등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편집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무미건조하다. 좀 더 다채로운 영상이 필요하겠다. 소소하지만 나에겐 소중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을 텐데 갑자기 생각하려니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라도 오십 년 세월을 어찌 몇 분짜리 영상으로 줄일 수 있겠는가. 주요 장면은 누가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주요 장면과,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면은 다를 수 있으니까.
요즘 야구 하이라이트 영상은 12분~15분 정도가 보통이다. 시간 절약을 위해 요약한 영상으로 보지만 그 정도는 조금 아쉽다.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영상도 너무 짧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게 뽑을 만한 삶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훗날 내가 내 삶을 돌아보며 주요 장면을 추릴 때 기쁘고 행복했던, 활짝 웃던 장면들로 좀 더 길게 채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