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첫날밤에 게르 숙소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아 들어갔다. 원형 실내 가장 자리에 직각으로 놓인 침대가 두 개 있고, 반대편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작가 까만 벌레가 몇 마리 보였다. 크기는 무당벌레 정도였는데 그보다 약간 길고 색깔이 검은색이었다. 안내 차 들어온 현지인 아주머니에게 벌레가 있다고 말하자 서툰 한국말로 “여기 이런 벌레 많아. 괜찮아.”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잡아서 밖에 버렸다. 아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나도 그분의 너무나 태연한 행동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좀 출출하기에 밑에 식당 건물에 가면 뭔가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갔다. 게르들 사이로 반듯하게 난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현지인 젊은 남자가 생수 병을 들고 우리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생수를 사라는 건가?’ 하면서 지나갔다.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모습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필요한 걸 사고 다시 올라오는데 그 남성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때 우리 가이드가 지나가다가 우릴 발견하곤 불렀다.
물을 받아 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젊은 남성은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 기사였다. 첫날이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으니 우리가 못 알아본 것이다. ‘만약 만나지 못했다면 밤새 저러고 서 있을 거였나?’ 물병을 건네기라도 하든지 뭐라고 말을 하든지 하지 그냥 보고 서 있으면 어쩌라는 건지. 아까 그냥 지나친 게 괜히 미안해졌다.
둘째 날 오후 승마체험을 하러 현지 마을에 갔다. 띄엄띄엄 전통 게르가 있었고, 말 삼십여 마리가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가이드 안내에 따라 말을 배정받고 말 두 마리당 현지인 기수가 붙어서 말을 타고 우리 일행 두 명이 탄 말을 이끌었다. 난 짝이 안 맞아서 혼자 탔는데 나를 이끈 기수는 젊은 여성이었다. 체험은 30분 정도 진행했는데 현지 초원을 따라 말을 타고 이동하는데 경사가 심한 곳도 있어서 스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이드가 갑자기 혼자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와~" 우리 일행들이 수간 탄성을 질렀다. 기마민족의 후손 다운 모습이었다. 가이드가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환호하는 우리를 보며 몽골인들은 대부분 말을 잘 탄다고 했다. 자긴 도시에서 자랐지만 방학 때면 시골 친척 집에 가서 말을 타고 놀아서 자연스럽게 말타기를 배웠다고 한다. 우리를 이끈 기수들은 대부분 학생들이고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했다.
승마 체험 후에 전통 게르를 둘러봤다. 실내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문양의 가구들과 침대가 있고, 사냥도구, 가죽으로 만든 큰 통 등이 있었다. 우린 마주 보고 앉아서 현지 음식 맛을 봤다. 대부분 우유를 발효 시켜 만들었는데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다. 그 집에는 두 자매가 있었다. 언니로 보이는 사람은 대학교 4학년이며 기자를 전공한다고 했다. 패키지여행 특성상 현지인을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착해 보였다. 가이드도 자기네 몽골 사람들은 착하다면서 뿌듯해했다.
생수병을 들고 웃으며 받아 가기를 기다리던 젊은 기사 청년, 숙소 바닥에 있는 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하면서 손으로 잡아 버리던 숙소 직원, 말을 아주 멋지게 잘 타는 가이드와 전통 게르 안에서 수줍게 현지 음식을 소개해 주며 나워 주던 현지 학생들 모두 짧게 스친 기억밖에 없지만 내 기억 속에 아름답고 멋진 몽골인의 모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