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가족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을 인화했다. 직장 근처에 사진관이 있어서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중 인화할 사진을 고르고 골라서 USB에 담아 사진관에 갔다. 사진관 사장님은 USB를 컴퓨터에 꽂고 사진을 보시며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네요. 저희 어머니도 연세가 많으신데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사진 찍으면 인화는 안 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여긴 어딘데 이렇게 예쁜 꽃도 있고 멋져요?” 등등 약간 과하다 싶은 반응을 보이셨다. 사장님은 나보다 4살이 많았고, 사장님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보다 한 살 적었다. - 어리시다고 표현해야 할지, 적다고 표현해야 할지, 적으셨다고 표현할지 모르겠다. - 아무튼 사장님은 짧은 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사진을 인화하는 행위가 무척 잘 하는 것이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라 걸 계속 확인 시켜 주셨다.
주뼛주뼛 어색하게 들어간 나에겐 그런 사장님의 반응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며 사장님 옆에 앉아 몇 가지 주문 사항을 말씀드렸다.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가 같이 찍은 사진은 크게 뽑아 달라고 했다. 어제 점심때 맡기니 퇴근할 때 찾아가라고 하셨다. 정말 오랜만에 사진관에서 사진을 인화했다. 휴대폰 액정으로 보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다. 비로소 실재하는 사진이 되었다. 사진 인화했다고 형제들 단톡방에 말하니 각자 갖고 있는 사진들을 마구 올린다. 이번 연휴에 시골집에 갈 예정이니 인화하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얼른 보내라고 했다.
사진을 USB에 담아 사진관에 다시 갔다. “사장님, 사진 인화한 걸 단톡방에 올렸더니 형제들이 자기들 사진을 막 보내네요. 추가로 인화 좀 해주세요.” 말하고는 어제와 같이 사장님 옆에 앉아 인원수 대로 뽑을 사진, 배경을 조금 자를 사진 등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옛날엔 사진 찍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한 장 한 장 앨범에 꽂아 소중히 보관했다. 집집마다 앨범이 몇 권씩 있었고, 그 앨범 안엔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과 삶이 담겨 있었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이면 앨범을 빼서 같이 보며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앨범에 사진을 보관하는 집이 드물다. 모두 각자 휴대폰 속에 사진을 보관하기에 같이 볼 기회도 많지 않다. 찍기는 하는데 사진을 보진 않는다. 보지도 않을 사진을 왜 찍을까. 물론 찍을 땐 기념하기 위해 찍는다. 나중에 언젠가는 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찍은 사진은 며칠이 지나면 아주 뒤로 밀려 버리곤 한다. 못 보는 건 아니지만 보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사진은 그렇다.
찍기는 했는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상태다. 내 휴대폰 안에 있지만 몇천 장 몇만 장 속 사진들 중 하나로 남아 스크롤 되어 지나치기 일쑤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심심하실 때마다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시겠지. 수없이 찍긴 했지만 너무 많은 사진들 속 어떤 사진이 있는지조차 잊고 사는 우리와는 달리 어머니는 그 사진 몇 장을 만지고 또 만져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