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동사 이야기
어제 움직씨 이야기를 쓰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자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에 말들이 움직인다. 무슨 말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씨들이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쓰지 못한 말이 훨씬 많은데 짧은 시간에 너무 간단하게 쓴 거 같아서 오늘 더 써본다. 움직씨 위주로 생각하니 삶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내가 보는 내 삶은 너무나 주관적이겠지만 움직씨 자체는 아주 보편적이다.
만나다. 헤어지다.
살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나이가 든다는 건 관계가 확장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만났던 사람과 헤어지기도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들이었을 그 사람들은 지금 잘 살고 있겠지.
헤어짐은 의지에 의한 것과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 있다. 대부분은 의지와 상관없이 헤어졌다. 살면서 극히 일부만 내 의지 또는 상대의 의지로 헤어지게 된다. 의지에 의한 헤어짐은 아픔을 남기기 마련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라는 평소엔 아주 쉽게 들리는 말도 나에게 닥치면 힘들다.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갈수록 헤어짐을 잘하지 못해 큰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다.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면 만나지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울다. 웃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난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내 삶은 울음으로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웃음을 배웠다.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거의 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웃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울음도 사라졌지만 웃음도 많이 사라졌다. 많이 웃자. 웃을 일이 없다면 찾아서 웃자. 아재개그라도 하면서 웃자.
받다. 주다.
어릴 땐 받는 기쁨이 컸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 여전히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게 많다.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받은 것에 감사하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 능력 안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가다. 오다.
어릴 적 명절날 누나가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멀리서 누나가 걸어온다. 한 걸음에 뛰어가 누나 손을 잡고 걸어온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던 큰 누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갔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그 누나가 온다. 하루 이틀 지나면 간다. 만남의 기쁨은 잠시, 또 가야 할 것을 알았기에 시간이 늦게 가기만을 바랐다.
여행을 간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여행 가방에 옷과 세면도구 등을 챙기면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알면서도, 빨리 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오는 길은 아쉽다. 그래도 또 갈 날을 기약하며 돌아온다. 인생이 여행과 같다면, 난 지금 여행길의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돌아갈 날이 정해지지 않는 이 여행길에 되도록 많은 추억을 남겨 보자. 왔으니 가겠지. 갈 때 아쉽지 않게 여행을 충분히 즐기자.
벌다. 쓰다.
매일 돈을 쓴다. 움직이면 돈이 나간다 할 정도로 매 순간 돈이 나간다. 삶은 돈을 쓰는 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돈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돈을 번다. 직장인이니까 매달 버는 돈은 정해져 있다. 쓰는 돈도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가끔 충동적으로 쓰기도 한다. 잘 벌고 잘 써야 한다. 돈 버는 일을 즐겁게 하자. 쓸 때 기쁨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자.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벌고 멋지게 쓰자.
사다. 팔다.
돈은 주로 뭔가를 사는데 쓴다.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번다. 난 노동을 파는 사람이구나. 가끔 블로그로도 돈을 번다. 아주 적은 돈이다. 그 또한 내 노동을 판 결과다. 직장에서 파는 노동 외에 다른 걸 팔아보고 싶다. 좀 더 생산적인 것. 뭔가를 생산하고 싶다. 글도 그래서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는 건 소비이고 파는 건 생산이다. 소비자로서의 삶보다 생산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벌다와 쓰다가 팔다와 사다로 연결된다. 삶의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경제활동은 쓰고 버는 것과 사고파는 것이 기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