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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움직씨 2

못다 한 동사 이야기

by 혼란스러워

어제 움직씨 이야기를 쓰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자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에 말들이 움직인다. 무슨 말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씨들이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쓰지 못한 말이 훨씬 많은데 짧은 시간에 너무 간단하게 쓴 거 같아서 오늘 더 써본다. 움직씨 위주로 생각하니 삶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내가 보는 내 삶은 너무나 주관적이겠지만 움직씨 자체는 아주 보편적이다.


만나다. 헤어지다.

살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나이가 든다는 건 관계가 확장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만났던 사람과 헤어지기도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들이었을 그 사람들은 지금 잘 살고 있겠지.


헤어짐은 의지에 의한 것과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 있다. 대부분은 의지와 상관없이 헤어졌다. 살면서 극히 일부만 내 의지 또는 상대의 의지로 헤어지게 된다. 의지에 의한 헤어짐은 아픔을 남기기 마련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라는 평소엔 아주 쉽게 들리는 말도 나에게 닥치면 힘들다.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갈수록 헤어짐을 잘하지 못해 큰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다.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면 만나지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울다. 웃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난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내 삶은 울음으로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웃음을 배웠다.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거의 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웃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울음도 사라졌지만 웃음도 많이 사라졌다. 많이 웃자. 웃을 일이 없다면 찾아서 웃자. 아재개그라도 하면서 웃자.


받다. 주다.

어릴 땐 받는 기쁨이 컸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 여전히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게 많다.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받은 것에 감사하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 능력 안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가다. 오다.

어릴 적 명절날 누나가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멀리서 누나가 걸어온다. 한 걸음에 뛰어가 누나 손을 잡고 걸어온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던 큰 누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갔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되면 그 누나가 온다. 하루 이틀 지나면 간다. 만남의 기쁨은 잠시, 또 가야 할 것을 알았기에 시간이 늦게 가기만을 바랐다.


여행을 간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여행 가방에 옷과 세면도구 등을 챙기면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알면서도, 빨리 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오는 길은 아쉽다. 그래도 또 갈 날을 기약하며 돌아온다. 인생이 여행과 같다면, 난 지금 여행길의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돌아갈 날이 정해지지 않는 이 여행길에 되도록 많은 추억을 남겨 보자. 왔으니 가겠지. 갈 때 아쉽지 않게 여행을 충분히 즐기자.


벌다. 쓰다.

매일 돈을 쓴다. 움직이면 돈이 나간다 할 정도로 매 순간 돈이 나간다. 삶은 돈을 쓰는 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돈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돈을 번다. 직장인이니까 매달 버는 돈은 정해져 있다. 쓰는 돈도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가끔 충동적으로 쓰기도 한다. 잘 벌고 잘 써야 한다. 돈 버는 일을 즐겁게 하자. 쓸 때 기쁨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자.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벌고 멋지게 쓰자.


사다. 팔다.

돈은 주로 뭔가를 사는데 쓴다.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번다. 난 노동을 파는 사람이구나. 가끔 블로그로도 돈을 번다. 아주 적은 돈이다. 그 또한 내 노동을 판 결과다. 직장에서 파는 노동 외에 다른 걸 팔아보고 싶다. 좀 더 생산적인 것. 뭔가를 생산하고 싶다. 글도 그래서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는 건 소비이고 파는 건 생산이다. 소비자로서의 삶보다 생산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벌다와 쓰다가 팔다와 사다로 연결된다. 삶의 가장 큰 축을 이루는 경제활동은 쓰고 버는 것과 사고파는 것이 기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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