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동사(動詞)를 생각한다. 학창 시절 영어 공부하면서 열심히 외웠던 품사,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동사로 관철됨에도 그것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동사는 우리말로 ‘움직씨’라고도 하며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다. ‘움직씨’라는 예쁜 말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의 삶을 채우는 동사는 무엇이 있을까. 난 매일 책을 읽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읽다 와 쓰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행위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다. 좀 늦을 것 같으면 뛴다. 주말엔 운동 삼아 걷거나 뛴다. 걷다 와 뛰다는 내 삶과 건강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동사다. 그 외에 많은 동작이 내 삶을 이루는데 대부분 명사에 ‘하다’를 붙여 사용한다.
요리하다. 설거지하다. 세수하다. 샤워하다. 운동하다. 독서하다. 공부하다. 반성하다. 사랑하다. 용서하다. 삶은 뭔가 하는 것이구나. 몸은 기계처럼 주기적으로 정비를 해야 한다. 손톱이나 발톱이 길면 깎아야 한다. 머리카락도 주기적으로 깎는다. 어릴 땐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발하다’라는 말을 썼다. 손발톱이나 머리카락이 아닌 것도 깎는다. 사과나 배 등 껍질이 있는 과일을 먹을 땐 작은 칼로 껍질을 깎아 먹는다. 내가 초등학교 땐 연필깎이가 없어서 연필을 칼로 깎아 썼는데 누나는 연필을 아주 뾰족하고 예쁘게 깎아주곤 했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서 생선이나 과일 따위를 살 때 늘 값을 깎곤 했다.
난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 오래된 습관이다. 대신 점심과 저녁에 밥을 많이 먹는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 중 하나는 먹는 것이 아닐까. 음식 따위를 입에 넣어 씹은 뒤 식도를 통해 위로 들여보내는 행위는 왜 ‘먹다’일까. ‘먹’자를 보고 있자니 사람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나이를 먹다 보니 방금 한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자주 까먹는다. 어릴 때 늦여름이면 호두나무 밑에서 호두를 주워 까먹고, 가을엔 밤나무 밑에서 툭툭 떨어지는 밤을 주워 까먹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젠 그런 기억도 흐릿해지고, 좋은 추억들을 자꾸만 잊어 먹는다.
집에 가면 습관적으로 TV를 본다. 가족끼리 얼굴 보고 대화할 시간도 부족한데 자꾸만 TV를 보거나 다른 미디어를 보게 된다.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가족 얼굴을 보자. 요즘엔 집에 고양이가 있어서 고양이와 자주 논다. 전엔 놀아준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논다. 이번에 광복절이 주말에 붙어서 3일간 쉬었다. 오늘 출근하니 ‘노는 제 젤 좋아’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일해야 먹고산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일’이었구나. 오늘도 일하고, 내일도 일한다.
점심 먹고 조금 피곤해서 잠깐 남들 몰래 졸았다. 하지만 남들은 알 것이다. 내가 꾸벅꾸벅 졸았다는걸. 이런 날은 지난 휴일이 더 아쉽다. 휴일엔 다른 날보다 좀 더 놀고 잔다.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놀고 많이 잔다. 생각해 보니 인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자는구나. 조금 전만 해도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줄 알았는데 잠자는 것을 가장 많이 하는구나. 그렇다면 인생은 자고, 일하고, 먹고, 놀고, 읽고, 쓰고, 깎고, 보고 그 외에 많은 것들을 하는 것이구나.
일하는 것도 다양하고 노는 것도 다양하고, 누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운전을 한다. 여행을 하고, 산을 오르며 놀고, 낚시를 하면서 논다. 축구를 하고, 테니스를 치고, 탁구를 친다. 수영을 하고 달리기를 한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린다. 나무나 돌 따위에 뭔가를 새기고 조각한다. 인생엔 많은 동사가 있다. 인생은 명사로 단정 짓지 말고 동사로 생각해 보면 훨씬 풍요롭다. 뭔가를 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