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하다

by 혼란스러워

새벽에 거센 빗소리에 잠깐 잠이 깼다. 그렇게 깬 뒤엔 더 깊은 잠을 잔다. 빗소리 덕분이다. 빗소리에 잠이 깨고 빗소리에 더 잘 자는 모순을 비 오는 새벽이면 경험한다. 아침 출근길엔 빗발이 약해졌다. 일하고 있는 지금은 검회색 구름이 무거운 이불을 아무렇게나 펴놓은 것 마냥 하늘을 뒤덮고 있다. 비 오는 날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왜 좋은지를 물어보면 마음엔 좋은 이유가 가득한데 설명은 잘 못한다.


'호젓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이 이 상황에 맞는 말인지 정확히 모르는데 그냥 그 말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 마침내 그 뜻을 검색해 본다. ‘후미져서 무서움을 느낄 만큼 고요하다’, ‘매우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라는 뜻이다. 전혀 없는 말은 아니었구나. 이 상황에 쓸 수 있는 말이었구나.


난 왜 비만 오면 이런 생각을 하는가. 생각하는 건 좋은데 그걸 또 글로 쓰고 싶다. 식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눈과 귀는 즐거운데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려니 뭔가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화장실에 가면서 식상하다는 말의 뜻을 생각했다. 설마 ‘식’이 먹을 식자인가? 우린 흔히 뭔가 새롭지 못하고 뻔할 때 식상하다고 하는데 왜 먹을 식자가 들어갔지? 검색창에 ‘식상하다’를 치고 엔터키를 누른다. 화장실에서 순간 뇌리에 스친 생각이 맞았다. ‘식’이 ‘먹을 식’ 자다. ‘어떤 음식을 자꾸 먹어 물리다.’, ‘일이나 사물이 되풀이되어 질리다.’


혹시 ‘식상하다’ 보다 ‘진부하다’가 더 어울릴까 하는 생각에 이 또한 검색해 본다.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비슷한데 어감이 다르다. ‘식상하다’는 나의 느낌, 즉 감정의 주체가 갖는 느낌인데 반해 ‘진부하다’는 대상 자체가 갖는, 또는 가져버린 새롭지 못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의 느낌을 글로 쓰면 그 글은 식상한 걸까, 진부한 걸까. 만약 내가 글을 진부한 표현을 늘어놓는다면 읽는 사람들은 식상하다고 느낄 것이고, 참신하게 쓰면 좋은 글이라고 느낄 것이다. 따라서 비 올 때마다 글을 써도 된다. 단, 식상하거나 진부하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인간이 단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렵 채집 시절에 과일 같은 것을 만나면 일단 먹어서 당을 축적해 놔야 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유전자 이야기처럼, 나에게 비 오는 날 좋았던 기억이 있나 기억을 되짚어 봤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시골이다. 집집마다 전화가 들어온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즈음. 뭐 그런 시절이다. 마을 사람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비 오면 대개 일을 쉰다. 일을 쉬었던 기억이 좋은 것일까. 여유로움과 모처럼 집안에 식구들이 모여 있는 날의 온기 같은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일까.


비가 오고 나면 말랐던 계곡물이 불어나 맑은 물이 흐른다. 냇가엔 물고기가 바글바글하다.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물고기를 잡는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우린 학교 운동장에서 비를 홀딱 맞으며 뛰어논다. 집에 오면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엄마가 감자나 옥수수를 쪄 주신다. 부침개를 해주신다. 따듯하다. 비 오는 날 먹었던 그 따듯한 음식들에 대한 추억도 한몫하는 것일까.


먼 옛날 호랑이가 아니라 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비 오는 날은 담배 맛이 더 좋았다.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은 지 7~8년이 지나서 담배를 거의 잊고 살지만 비 오는 날 거리를 지나다 누군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내 코를 파고들면 그 느낌이 되살아나서 잠깐 담배의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충동은 아주 잠깐이고 난 다시 담배 안 피우는 사람으로 돌아간다.


비 오는 날 많이 생각나는 말 중에 '구적 거리다'라는 말이 있다. 사투리인데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비 오는 날이면 많이 썼다. 옛날 시골집은 마당이 맨땅이었다. 그러니 비가 오면 질퍽거리기도 하고 마루 밑까지 빗방울이 튀어 좀 지저분하고 찝찝한 상태가 됐다. 그런 상태를 구적거리다고 표현했는데, 지금 서울에서 이 말을 쓰면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들을 것이다. 다행히 사전에 있다. '(지방 사투리) 비가 오거나 날이 습할 때 끈덕끈덕하고 찝찝한 느낌을 이르는 말.' 시멘트나 아스팔트, 보도블록이 뒤덮은 요즘 도시에선 이 말을 쓸 일이 별로 없다. 나처럼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그 느낌 때문일 것이다. '구적거리는' 느낌.


"날 궂은데 어딜 간다고." 어른들은 비 오는 날 어딜 가면 날도 궂은데 어딜 가냐고 했다. 그냥 어디 가냐고 묻는 말이기도 했고, 날씨가 나쁘니 어지간하면 집에 있으라는 말이기도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날이 궂다'라고 한다. 궂다는 좀 심술끼가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얄궂다', '심술궂다'라는 말 때문에 그런 걸까. 비나 눈이 내리는 것을 하늘이 심술을 부린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도 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마땅한 기억을 찾을 수 없다. 단편적이거나, 이유가 아니라 결과일 뿐인 것들이다.


요즘 같이 비가 자주 올 땐 특별히 빗소리를 그리워하진 않지만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계절엔 일부러 빗소리를 찾아 듣기도 한다. 빗속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밤에 잠들 때 빗소리를 재생시켜 놓고 들으며 잠들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소리 때문일까?


오늘 재난 알림 문자가 많이 온다. 비가 언제부터 재난이 되었나. 사람들이 사나워지듯 비도 사나워진다. 사람들이 사나워지기를 멈추지 않는 한 비도 점점 더 사나워질 것이다. 비가 내렸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식상한 것 같아 다른 걸 생각해 보기로 했다가 상하다의 '식'자가 마음에 걸려 사전을 찾았다. 그래놓고 여전히 비에 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진부하지만 무엇이든 다 쏟아 보자고 마음먹었기에 나오는 대로 쏟아 낸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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