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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인생이여 파란만장 하여라

by 혼란스러워

“선배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안부 인사드려요.” 출근 후 일할 준비를 하는 중에 후배가 메시지를 보냈다. “어 그래 별일 없지?” 바쁘기도 하고 딱히 할 말도 없었기에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네. 전 매일 똑같아요. 근데 그거 아세요? 지구 역사상 같은 날씨가 한 번도 없었대요. 선배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누가 물었으면 나도 매일 똑같다고 답변했을 텐데 괜한 오기가 들었다.


“매일 날씨가 다른데 어떻게 일상이 똑같겠니.어제는 파란 하늘, 오늘은 잿빛 하늘, 어제는 시원한 바람, 오늘은 습한 바람, 어제는 빨갛던 벚나무 열매가 오늘은 진한 보라색인걸.” 참나 언제부터 그렇게 감정적이고 시적이었다고 엄한 후배한테 이런 객기를 부리다니 내가 봐도 한심했다. 근데 왜 그 말이 튀어나왔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 갑자기 그렇게 떠오른 것이 신기했다.


말해놓고 보니 제법 괜찮은 말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후배한테 쏟아 놓긴 했지만 이건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일종의 자기반성이었다고 할까. 왜 내가 사는 일상을 매일 똑같다고 치부해 버리냐는 것이다. ‘똑같은 일상’은 사람들이 흔히 아주 쉽게 자기 일상을 비관하며 내뱉는 말이다. 정말 똑같았을까. 큰 범주에선 같았겠지.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게 달랐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도 몇 초라도 달랐을 것이고, 어제 주어진 일과 오늘 주어진 일이 달랐다. 어제 스친 사람과 오늘 스친 사람이 달랐다. 심지어 내 몸도 어제의 몸이 아니다. 새로운 어제 멀쩡하던 어떤 세포는 죽어 떨어지고 새로운 세포가 태어났다.일상은 잔잔한 호수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 매일 똑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단조로 삶이란 말인가. 권태는 또 하나의 고통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죽을 때 내 삶을 돌아보며 “참 재밌게 살다 간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삶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 아니겠는가. 죽을 때 참 재밌게 멋지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내 인생은 ‘파란만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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