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지 않고 장마 기간이 끝나나 했더니 폭우가 내렸다. 핸드폰엔 재난 알림 문자가 계속 온다. 퇴근길에 지하철 출구에서 나온 뒤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올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버스를 탄다. 다양한 번호를 단 버스들이 속속 도착해서 사람들을 태우고 사라진다. 드디어 내가 타야 할 마을버스가 왔다. 이 버스는 비교적 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산을 접고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비 내리는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데 승무원이 경적을 울리며 투덜대고 있다. 상황을 보니 우회전 대기 중에 보행신호가 걸렸고 앞에 있는 승용차가 일시정지 중이었다. 승무원은 보행자 신호라도 사람이 없으니 우회전하면 되는데 가지 않고 있다며 앞차에 대고 계속 뭐라 하신다. 운전 법규를 제대로 보고 운전을 하라는 둥 답답하다는 둥, 앞을 보니 진입하려는 큰 도로에 직진 차량들이 쌩쌩 달려서 우회전으로 진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을버스 승무원은 매일 다니는 길이니 눈 감고도 다닐 테고 이런 상황을 수천 번은 족히 겪었을 것이며, 배차 간격도 맞춰야 하니 앞차가 답답하고 짜증 나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승객을 태우고 가는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이니 조금만 더 침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답답하긴 하겠지만 보행 신호 그 몇 초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짜증 내면 본인 건강에 더 해로울 것 같다. 보행신호가 빨간불이면 모를까 녹색불이면 사람이 없어도 잠시 멈춰 있는 게 더 안전할 테고, 언제 어디서 자전거나 사람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니 조심한다고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밖 경치 감상하던 분위기가 깨졌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날씨에 맞게 나에게도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박선주의 ‘귀로’라는 노래였는데 승무원 아저씨는 방금 짜증 내던 사람이 맞나 싶게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노래가 끝나고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가 나왔는데 버스 창가에 빗물이 흘러내리고, 아스팔트 바닥에 고인 빗물에 차량 불빛이 비치며 꽤나 운치 있는 풍경에 딱 맞는 노래였다. 나도 아주 작게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 한 곡에 나도 승무원 분도 잠시 감성에 젖었다. 승무원분이 짜증을 내고 투덜댄 건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앞차 운전자가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승객들과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혼잣말로 그렇게 하는 건 반복적인 운전 업무에서 오는 피로와 졸림, 스트레스를 떨어내는 그 만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였을 테고. 집 근처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난 카드를 찍으며 평소 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승무원 분도 “네. 들어가세요.”라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내려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늘 안전 운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