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 주일 정도 너무 덥고 습해서 힘들었는데 오늘 드디어 비가 내린다. 그동안 뜨겁게 달궈진 도로와 건물, 자동차도 식히고 나무와 풀들도 이 비를 맞고 시원해지면 좋겠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좋아서 창을 조금 열었다. 도시의 소음과 에어컨 실외기 소리에 빗소리가 묻히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열린 창문 사이로 비에 한층 시원해진 바람이 느껴지고 대지에 대고 연주라도 하는듯한 빗줄기 소리도 들린다. 축 늘어졌던 나뭇가지도 생기를 얻고 사람들 표정에도 웃음기가 돋는다.
비는 생명이다. 대지를 적셔주는 비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엔 생명은 없었겠지. 어릴 적 비를 흠뻑 맞고 집에 온 날이면 어머니가 내어 주시던 빳빳하게 마른 새 옷의 감촉이 생각난다.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어머닌 부추전을 만드셨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안을 감싸고돌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대청마루에 앉아 부침개를 먹으며 빗줄기가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하곤 했다.
지붕을 때리는 소리, 처마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 나뭇잎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멀찍이 강아지 밥그릇을 때리는 소리, 주변의 악사들이 지칠 줄 모르고 연주를 했다. 비에 눅눅해질세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집안엔 매콤한 연기가 가득해지고, 방바닥이 따듯해지며 집이 뽀송뽀송 더 아늑해졌다. 따듯해진 아랫목엔 붉은 고추를 말리고 우리 가족은 시원한 대청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여름날엔 비 흠뻑 맞고 집에 들어갔던 그 어린 날 느꼈던 마른 옷의 감촉, 부침개 냄새, 매콤한 아궁이 연기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