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괴로워
도시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은 이 도시가 자연스럽겠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시골에서 자란 기간 보다 도시에서 산 기간이 길어졌음에도 여전히 도시는 적응하기 어렵다. 특히 도시의 온갖 소음이 그렇다. 오늘도 사무실 건너편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중장비를 이용해 계속 땅을 판다. 작년 이맘때 공사를 시작했는데 아직 건물 형태는 보이지 않고 높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공사장에선 참기 힘든 기계음만 들린다.
건물을 짓겠다는데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이렇게 공사장 소음을 들으며 지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도시에선 어쩔 수 없이 온갖 기계음을 듣고 살아야 한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시위대가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 경찰차, 구급차, 견인차 등이 내는 사이렌 소리 등등 하루 종일 귀가 편할 날이 없다. 잠시 조용한 것 같아도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묵중한 소음이 사방에 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릴 적 외가에 가서 며칠을 보내다 오곤 했는데 외가가 있는 곳은 시골 중에서도 구석진 마을이었다. 그곳은 아주 조용했다. 기계음이라곤 하나 없이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나 매미 소리, 개구리울음소리, 새 울음소리 등 자연의 소리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외할머니는 여름이면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곤 했는데, 가끔 “버스 간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대청마루 뒤 문을 내다보면 저 멀리 산등성이 넘어 나무 사이로 파란 완행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꽤 먼 거리였는데 외할머니는 버스 엔진 소리로 버스가 지나가는 걸 아신 것이다. 사방이 워낙 조용하니 가능했을 것이다. 그 고요함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건 맑은 공기와 물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이 주는 그 고요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일할 준비를 하는 중에 오늘따라 유독 큰 공사장 소음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바위를 뚫는 건지 거대한 장비로 뭔가를 때리는 듯한 소리는 내 머리와 심장을 때린다.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듯이 도시의 소음도 적응해서 잊고 살다가도 오늘같이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괴롭다. 이런 날엔 눈을 감고 외갓집 대청마루 풍경을 상상해 본다. 사방은 고요하고 외할머니는 내 머리맡에 앉아 바느질을 하신다. 그러다 혼잣말을 하신다. "버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