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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종점

by 혼란스러워

“이번 역은 이 열차의 마지막 역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이번 역에서 하차하시기 바랍니다.”, “앗!” 휴대폰을 들고 전자책을 읽다가 안내 방송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내리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해보니 외근을 마치고 바로 퇴근하려 지하철을 탄 것이 그만 방향을 반대로 타서 종점까지 와버렸다. 25분 정도를 반대 방향으로 달린 것이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자신을 책망하며 내려서 퇴근 방향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사람들을 쏟아 놓은 지하철은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가며 내리지 않은 사람은 없는지,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은 없는지 살피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청소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가득했던 열차 안이 텅 비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객실 내 불이 꺼지자 열차는 마치 “아 피곤해!”라고 말하듯 ‘치이 익~’ 바람 빠지는 소리를 크게 내뱉었다.


평소 볼 일이 거의 없는 종점 풍경이 새롭다. 좀 전까지만 해도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가 평소 안 가본 곳에 와 본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자가치유랄까. 긍정 회로를 발동시킨 것이다. 어차피 발생한 일 후회하고 책망해 봐야 뭣하겠나. 그나저나 종점이라니.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종점 이라고?. 인생도 이렇게 갑자기 끝나 버리는 것일까. 달리다가 끝나는 지점.


지하철 종점은 안내판이라도 있지. 인생은 안내판 없는 노선이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몇 정거장을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환승역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환승할지 계속 갈지, 환승을 한다면 어떤 색깔 노선으로 환승할지, 환승해서 어디서 내릴지 모든 게 정해지지 않은 여행과 같은 게 인생이다. 내가 탄 인생이라는 열차의 노선은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이 열차를 탄 것도 내 의지가 아니듯, 내리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닐 것이다. 아무도 그 끝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다만 열심히 달릴 뿐. 오늘처럼 상황 파악도 못한 채 갑자기 강제 하차 당하지 않도록 방향도 잘 보고, 지금 내가 어느 역을 지나가는지도 살피고, 방향을 바꿔야 할 땐 과감히 바꾸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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