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年의 내가, 2024年의 나에게
서연(曙衍)아!
찬란한 나의 젊음, 사랑스러운 나의 청춘아.
지금은 2075년 봄이다. 어느덧 난 90을 바라보는 흰머리 할머니가 되었어. 난 언제나처럼 벚꽃이 보이는 서재의 창가에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단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무척 따뜻해. 그 빛 아래서 꾸벅꾸벅 조는 날이 잦아졌구나.
나이가 들면, 가끔씩 창문 밖으로 나 자신의 젊은 나날을 돌아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데, 오늘은 50년 전의 네가 보여.
네가 있는 곳은 ○○교육원이구나. 계절은... 나뭇가지가 앙상하고 곳곳에 눈이 쌓여있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툼한 것으로 보아 겨울인 모양이야. 12월쯤 되었을까.
아, 마음치유과정이었지. 어렵사리 신청하고 선발됐는데, ... 비난받은 후 참석했었지. 그때 넌 분노와 억울함을 느꼈지만, 현명하게 잘 참았어. 넌 스스로 물었지. 그 말이 10년 뒤의 나에게 영향을 줄 것인가? 대답은 전혀 아니다, 였어. 그의 말은 지나가는 바람 소리나 공사장의 굴착기 소리 같은 거였으므로, 감정에 공간을 줄 가치 따윈 없었거든.
넌 신난 표정으로 여기저기 혼자서 잘도 돌아다니네. 하긴 너는 뭉게구름마냥 홀로 떠다니기 좋아하는 인간이었지.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단다. 너의 밝은 표정 뒤로는, 너를 집어삼키려는 우울과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걸. 그 감정들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는 걸 말이다. 대체 어떤 우울이 네 가슴속에 살았던 걸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아. 50년 전엔 인생이 끝없는 늪지대요, 어두운 터널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네. 하지만 넌 빛으로 나오기 충분한 잠재력을 이미 갖추었어. 아니, 사실 이미 빛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라. 네가 너를 감싸 안아주기만 한다면 말이야.
네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알고 있니? 그중 가장 잘한 일을 손꼽아보라고 한다면, 난 다음과 같이 말할 거야.
나와 20년을 함께 한 강아지를 내 품에 안은 채 무지개다리로 건너 보낸 일.
아빠가 100세의 나이로 떠나실 때 사랑한다고, 우리 아빠여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린 일.
심심해하는 엄마와 함께 기타와 우쿨렐레를 치며 즐거워한 일.
7년이 지나 엄마가 떠나실 때, 역시 사랑한다, 우리 엄마여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린 일.
외롭다, 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말없이 앉아 노을을 감상한 일.
동생들과 다 같이 아랫목에 발을 묻고 낄낄대며 시시덕거린 일들.
돌이켜보니 돈도 명예도 중요했지만, 이런 일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를 더욱 미소 짓게 하네.
다시 ○○교육원으로 돌아왔어. 너는 혼자 밥을 먹어. 그리고 강의실에 홀로 걸어 들어가네. K교수님, A소장님, 그리고 열한 명의 동료들의 모습도 보여.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안고, 함께 치유하고자 그 자리를 찾았던 애틋한 나의 동료들.
강의실에 한데 모인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바라보렴. 왜냐하면 그 강의실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네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복을 빌고, 가끔씩 기도해 주렴. 우주의 강력한 힘이 그 기도를 타고 각자에게 전달될 것이야.
아! 아직 네 마음 깊은 곳의 죄책감과 위축감이 보여. 가슴을 펴고 불안과 두려움, 우울마저도 품으렴.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을 걸어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 그들이 설령 여러 번 다시 찾아오더라도 너는 당황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울고 싶을 때 우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단다.
널 다정하게 끌어안거라. 그건 오롯이 너의 몫이야. 난 너 자신이자, 너의 보호자이고, 엄마란다. *너의 이름의 뜻처럼 아름다운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온전히 살기 바란다.
볕 좋은 날, 九旬을 바라보는 서연이,
너무도 사랑하는 젊은 날의 서연에게
*曙衍은 假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