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一 作者未詳
역사 아카이브 PDF자료 중 '1일 1시간 1년 졸업, 경찰관조선어교과서, 경성 조선어연구회'를 발견했다.
1928년 발행 교과서다. (일제가 조선의 말과 문화를 본격적으로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기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때부터 나름 나랏일(?)하는 순사들의 조선어를 따로 교육해야 할 만큼 일본어가 國語대접을 받았던 걸까? 역사 공부 좀 해야겠다)
그땐 무엇을 배웠는지 살펴보니 교과서 초반부엔 한일대조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살펴보던 중 요즘 분위기에 꼭 맞는 시 한 편을 읽게 됐다.
거의 100년 전의 풍경을 눈앞에 묘사한 듯 그린 데서 오묘한 감동을 느꼈다.
무엇보다 시가 너무 예뻐서 기록에 남겨두고 싶다.
봄(春)
봄이되여 일긔(日氣)가 땃뜻하오
초목에 새싹이 나오
산에는 여러가지꼿치 피엿소
누른것은 개나리꼿치요 붉은
것은 진달내꼿치요
산에는 새가 울고 들에는 나
븨가 날어단기오
참 조흔시절이요
날이 화챵(和暢)하니 꼿구경(求景)이나
갑시다
사구라꼿츤 어듸가 유명하오
먼산에 아지랑이가 끼엿소
여긔저긔 구경군이 만소
농부들은 들에 나와서 뎐답(田畓)
을 가오
녀편네는 산에 가서 나물을
하오
꾀꼴이가 버들가지에 안저서
우오
아름다운 시지만, 한편으론 조금 슬펐다.
1928년 일제강점기에도 초목에는 새싹이 나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산에선 새가 울고 들에는 나비가 날아다녔구나.
화자는 내가 글로 배운 '그 시대'를 참 좋은 시절, 이라고 노래하며 날이 화창하니 꽃구경 가자고, 벚꽃은 어디가 유명한지 묻고 있다.
여기저기 구경꾼도 많다고 한 것을 보니, 일제강점기에도 사람들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꽃이 핀 날 꽃 보러 가고, 자연을 벗 삼아 그저 살았나 보다. 꾀꼬리의 울음소리 들으며 밭을 갈고, 나물을 캐면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찬연(燦然)한 봄의 그림과, 암담(暗澹)한 그 시대배경이 겹쳐지면서 기이하게 곱고도 설운 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