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는 없어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아.
뛰기 시작할 때부터 다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등이 아프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아무리 호흡을 해도 산소를 갈구하는 뇌의 갈증마저 느껴져. 나에게 달리기란 육체를 괴롭게 하는 일이야.
그래도 달리고 있을 때면, 내가 줄곧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의 초점이 흐려지니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달리기를 선택했어. 도망갈 길 없는 생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더라. 달리는 동안조차 생각에 빠져 상상력을 발휘할 만큼 체력이 좋은 게 아니라서.
뛸 때만큼은 뛰는 거리에 대한 목적의식이 생겨. 그래서 내 몸은 멈추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곤 해. 팔과 다리를 쥐어짜듯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고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해냈다, 는 성취감을 느껴. 그렇지만 이 성취감이 주는 도파민은, 내가 눈을 떼지 못하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까지 막지는 못할 정도에 불과해. 나는 찾아 헤매던 것들로 다시 눈을 돌려. 다시 거기에 생각이 집중'돼'. 이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나의 어떠한 기능인 것 같아.
잠깐의 해결책일 뿐인 이 달리기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슨 도움이 되어줄까? 나를 붙잡아 수면아래로 밀어 넣는 무언가로부터 날 구해줄 수 있을까? 나는 답을 몰라. 해결책도 없어.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밖으로 나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지만, 확실한 망각의 길로 이끄는 달리기를 하러. 그래, 단지, 잊기 위해 달리는 거야.
심드렁한 하늘은 무심하게 새파랗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