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택 받은 사람과 선택하는 삶

<위로공단>을 보고

by 강우진
서도호, <바닥> /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 이 작품은 그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까지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중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유명한 철학자 샤르트르는 인생을 이 단 한마디로 정의한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끝없는 선택(Choice)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출생과 일정기간의 사회화 기간을 거친 후 부터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강요 받는다.


기본적으로는 오늘 아침엔 일어나서 무엇을 먹고 하루동안 무엇을 할 지 결정해야 한다. 더 크게는 진학과 진로 등 우리 인생 전체를 좌우할만한 큰 사건들을 정해야 한다. 죽기 전까지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유산을 누구한테 주어야 할지 혹여 이를 두고 자손들이 싸우지 않을지 죽어서까지도 고민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할 자유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인간으로서 기본권적 자유가 보장된 지는 이미 오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인간들은 자신들의 다유가 확대되어 가는 것을 끝없이 갈망했다. 그러나 이제 자유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다.


흔히 '선택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상류층 자녀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남들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그에 비해 하층민들은 애초에 선택할 기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집안이 가난하여 남들과 똑같이 교육받지 못하고 곧장 일터로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그 예다.


임홍준 감독의 다큐 <위로공단>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여성 노동자의 삶을 다룬다. 그 속에 등장하는 여공, 승무원, 콜센터 직원 등은 형태와 시대는 다르지만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 과연 여전히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는가.


영화 속 김진숙 위원은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농성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김 위원은 "내려가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목욕과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감옥을 간 것도 아니며 내가 선택해서 대공분실에 끌려간 것이 아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산 콜센터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가장 힘든 상황이 언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이가 무엇인가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해주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용돈 10만원 더 드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괴롭다.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난하니까 어쩔 수 없이."


차별 없는 사회는 없다. 어느 사회나 일정정도의 차별은 존재한다. 그것이 어느정도의 사회 안정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정당화 시킬 때 문제는 발생한다. 내가 노력했으니 이것은 당연히 정당한거고 너는 노력하지 않았으니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물론 인간이 운을 좌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운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이고 제도이고 민주주의다.


2018년을 마무리하며 묻고 싶다. 과연 화력 발전소에서 생을 마감한 김용균씨와 구의역에서 숨진 김군에게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는가. 우리는 그것을 아직도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좋은 사회란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 그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2019년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할 권리를 누렸으면 좋겠다.



2018.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