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icrounivers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서 Sep 04. 2021

내 안의 모닥불

나와 나 사이의 가장 따뜻한 거리.

이 microuniverse, 나라는 최소우주에는 꺼지지 않는 모닥불이 있다.


나는 그 모닥불에 자주 디이곤 했고, 때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몸을 불사르기도 했다. 나를 활활 태웠던 불은 때로는 열정과 환희, 비극적 우울함, 불안정하지만 오롯이 만끽했던 자유로움과 같이 얼굴을 매번 바꾸어 나를 끌어당겼다.


내 안의 '감정'이라는 불은 그만큼 매우 매력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심지어, 타버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불이 되고 불덩이가 내가 되는 희열마저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삽시간에 홀랑 일지언정 그 감정의 불길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을 나는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그 끝은 허무했다.


어제, 어떤 순간에 나는 우연찮게 불씨가 튀지 않을 거리까지 물러나 그 '감정'을 마주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았던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 나는 지금 화가 나 있구나.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는 좀 지질해서 생략) 아,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하지만 그럴 수 있지.'


내가 감정과 감성적 이성으로 분리되어 나에게 짧지만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약간 영원 같기도 하고 찰나 같기도 한 아마도 지구의 시간과는 다른 나의 마이크로유니버스에 해당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모닥불을 쬐며 안온하게 따스함을 느꼈다. 불길이 날름날름 하는 모습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살아있을 자유와 안전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얻은 것이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펜 끝에서 탄생한 철저한 비극과 아름다운 웃음으로 끝맺는 희극이 무색하게 이렇게 가만히 앉았으니, 불속에서 춤추는 감정들은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나였다.


지질하고, 이름 석자 받아 태어난 죄로 매력적이며, 무엇하나 완성하지 못했어도 살아있는 오늘이 벅찬 나였다.


무엇이 그리 급하고, 무엇이 그렇게 안타까웠는지 어떠한 임계점을 넘어가 하룻밤을 꿀같이 달게 자고 나니,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이 나지 않아 단편적인 조각만을 툭 이 공간에 내려놓는다. 시초의 단서가 될 첫 번째 퍼즐 피스한개를 그림판에 툭 올려놓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