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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서 Sep 04. 2021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어제저녁, 지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제 막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 초년병인 내가 문득 나는 에세이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모르게 그저 나의 경험일 뿐인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부풀릴까 봐 두렵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거야, 라는 집요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글쓴이의 삶을, 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라고.


조용하지만 따뜻한 음성으로 하신 말씀의 요점을 내가 한 줄로 정리하려니 혹시 내용을 흐리지 않았을까 걱정은 되지만, 내가 이해한 바를 이렇게 활자로 옮겨본다.


관점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을 펄럭여 다른 면을 조망하는 것처럼 이렇게 너무나 가볍고도 무겁다.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그런 집요한 목적을 가질 수 있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에 경계를 세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이라는 건 어떤 순간에는 물을 가두어 놓는 댐이 되는 것 같다. 그저 순리대로 흐르는 물을 억지로 가두지 않아도 내가 우려하는 것처럼 홍수가 나지도, 물이 부족해지지도 않을지 모른다. 아니 내가 우려하는 일은 사실 일어난 적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난다고 했던가.


눈을 감고, 얕게 흐르는 시냇물에 바지를 걷어붙이고 들어가 서서 가만히 발목을 스치고 흐르는 물결을 느끼는 상상 해본다. 나의 의지에 따라 나는 흐르는 물이 한번 치고 지나가는 장애물과 같은 객체가 될 수도, 그 흐름에 기분 좋게 나를 맡기는 주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체로서 나를 통해 흐르는 natural flow에 나의 의식과 마음을 연다면 언젠가는 나는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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