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오늘로 이어지는 순간에.
시계침이 12시 31분을 넘긴 시간, 컴퓨터를 켜서 classicFM을 재생시켰다.
이때부터는 지나간 오늘 방송분을 재방송을 하는데, 이 순간은 Jazz 수첩이 방송을 하는 시간이다. 나는 재즈에 대해 잘 모르고, 클래식 음악 또한 나오면 아, 클래식이구나 하고 인지하는 수준 정도밖에 안되지만, 이 라디오 채널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하는 전기현 씨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코너는 시간이 허락하면 꼭 제시간에 챙겨 듣지만, 사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하는 재방송시간이 훨씬 좋다.
시계는 새벽 한 시를 향해 달려간다. 지나간 어제의 기억이 멈춤 없이 오늘로 이어지고, 새로 올 날에 대한 설렘과 잠자리에 들어야 함이 아쉬운 감정들이 공존하는 새벽. 하루 종일 어깨에 묵직하게 들어가 있던 힘이 풀어짐을 느끼고, 얼굴의 근육이 이완되는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듯한 시간이다. 웅웅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거슬려 껐음에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약간의 찬기에 이제는 가을이 왔구나 싶다.
이른 저녁 지하철에서 내려 피부에 닿는 기분 좋은 바람에 반해 목적지까지 걷는 길에 가구점에 눈길을 주는데, 매우 예쁜 1인용 소파가 눈에 띄었다. 주인장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디피 상품이라 15만 원에 주겠단다. 마침 서재에 놓을 소파를 찾는데 이케아에는 마음에 들면서 가격이 합리적인 물건을 찾을 수 없어 실망하던 차에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싸게 해 주세요. 현금으로 드릴게요. 하니 만원을 빼주신단다. 배송비도 붙이지 않으시겠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의자를 구매했다. 노상에 보이게 놔두었던 세월이 얼마나 되었을지 모를 약간의 때가 탄 하늘색 소파였다.
즉시 구매해서 내일 받기로 하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친구들은 나의 쇼핑 방식을 두고 말들이 많다. 보는 즉시 마음에 드면 산다고 더러 충동구매러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밀히 나만의 쇼핑 철학이 있다. 일단 니즈가 생기면 나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또 그려본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나 쇼핑에 실제로 나서거나 다니며 그 디자인에 정확히 부합하거나, 상상 속 사고자 그려 놓았던 디자인보다 훨씬 예쁘지만 결이 같은 물건을 찾았을 때 그 즉시 구매를 하고 바로 쇼핑을 끝낸다. 이런 식이니 옷을 사러 가던, 가구를 사러 가던 채 30분이 걸리지 않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도는 경우도 허다하다.
호불호. 좋아함과 싫어함. 그게 뚜렷해서 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던 물건이던 예술작품이던 똑같이 적용되는 이 호불호 심한 성격을 싫어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 성향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그 특성이 무뎌 짐 또한 느낀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한 해 두 해 숫자를 더해가기 때문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턱을 괴고 잠깐 멍하니 눈을 뜨고 감다가 한숨을 한번 폭 쉬는 와중 재즈 수첩 황덕호 진행자는 오늘의 안녕을 고함과 함께 엔딩송을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