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게 아니라 속도를 바꾼 거였다

by 레인메이커

그것은 어느 화요일 오후, 회의실에서 일어났다.

몇 달째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하루 종일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확인하며, 잠들기 전에는 오늘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했다. 그렇게 계속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왜 달려야 하는지도 묻지 않은 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상사가 분기 실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에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었는데, 나는 갑자기 그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손끝에서 감각이 사라져 갔으며, 시야가 좁아지면서 눈앞의 모든 것이 수조 너머의 풍경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고, 거울 앞에서 물로 얼굴을 씻으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리기를 멈추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멈춘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편이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아침 알람을 30분 늦췄을 때, 나는 그것이 패배처럼 느껴졌다. 30분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기적의 시간'이었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침대에서 그저 누워 있는 데 사용했고, 이상하게도 그것이 오랜만에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최초의 방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단 10분이었지만, 그 10분은 내가 어디론가 향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고, 그들의 걸음걸이에는 방향성과 의지가 담겨 있었지만, 나는 그저 앉아서 비둘기가 발치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는 것을 관찰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시간 낭비라고 불렀을 것이고, 예전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낭비와 여유의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었다.

"요즘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동료의 질문에는 걱정과 함께 미묘한 당혹감이 섞여 있었고, "네가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라는 친구의 말에는 내가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암묵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속도로 사는 것,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멈추는 것이 곧 뒤처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속도를 줄이자 세계는 다르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세계는 늘 거기 있었고, 다만 내가 그것을 지각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출근길 가로수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는 것, 점심시간 공원의 벤치에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각도로 햇살이 내리 앉는다는 것, 퇴근길 골목에 사는 고양이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로소 감지할 수 있게 된 것들이었고, 그 감지는 속도를 늦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처음으로 '존재'와 '행위'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여기 있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 이해했다. 나는 멈춘 것이 아니라 단지 속도를 재조정한 것이었다.

남들이 달릴 때 나는 걸었고, 남들이 걸을 때 나는 섰으며, 남들이 설 때 나는 앉았다. 이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리듬으로 호흡하는 것이었고,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묻혀 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낼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들은 남들이 정해놓은 답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남들과 다른 속도여도 괜찮다는, 때로는 멈춰도 괜찮다는.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일종의 해방이었다.

물론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불안과의 협상이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성취하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무언가를 이루고 있었다.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 선택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기로 했다.

뒤처진다는 감각은 절대적 위치가 아니라 상대적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다른 경주를 하고 있으며 각자의 출발점과 목적지와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멈추는 것도 하나의 방향성이며, 속도를 바꾸는 것도 선택이고,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이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더 먼 곳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