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각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시점을 특정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서서히 침투하는 습기처럼 내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함께 깨어났고, 밤에 잠들 때까지 따라다녔으며, 때로는 꿈속에서까지 나를 괴롭혔다. 뒤처져 있다는 감각. 늦었다는 감각. 이미 기회를 놓쳤다는 감각. 그것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도 작동했고, 논리적 설명 없이도 확신을 주었다.
이상한 점은, 그 감각이 현실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조차 나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더 빨리 할 수 있었을 텐데.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화요일 오후에도,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불안, 가만히 있으면 더 뒤처질 거라는 공포.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그 감각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뒤처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누군가보다 뒤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뒤와 앞을 구분하려면 방향이 있어야 하고, 방향이 있으려면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가.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내게는 명확한 목적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뒤처져 있다고 확신했다.
모순이었다. 가는 곳도 모르면서 늦었다고 느끼다니.
그 모순을 응시하다 보니 하나의 구조가 드러났다. 뒤처졌다는 감각은 실재하는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화된 시선의 문제였다. 나는 누군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부모님의 기대, 사회의 규범, 또래 집단의 암묵적 합의, 미디어가 제시하는 성공의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하나의 시선을 구성했고, 나는 그 시선으로 나 자신을 판단했다.
그 시선 안에서 나는 늘 기준에 미달했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이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를 받았을 때, 어머니는 내 점수가 아니라 내 등수를 먼저 물으셨다.
"몇 등이야?" 나는 대답했고, 어머니는 잠시 침묵하시다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반에서 중간은 넘었네." 중간은 넘었다는 말.
그것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실망의 표현이었을까.
중요한 건,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위치를 상대적 서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절대적 성취가 아니라 상대적 위치.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가 아니라 누구보다 위에 있는지.
그 구조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
직장에서는 직급과 연봉으로, 관계에서는 결혼 여부와 자녀 유무로, 삶 전반에서는 소유한 것들의 목록으로.
나는 끊임없이 측정되었고, 분류되었으며, 서열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잃어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질문들은 사라졌다. 남은 건 '나는 어디쯤 있는가'라는 질문뿐이었다.
뒤처졌다는 감각의 가장 교묘한 점은, 그것이 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해도, 그 위에 또 다른 목표가 있었다. 어떤 위치에 도달해도, 그보다 높은 위치가 존재했다.
나는 계속 올라갔지만,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상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를수록 높아지는 계단이었고,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였으며, 끝나지 않는 경주였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뒤처지는 것이니까.
어느 날 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에 한 문장을 적었다.
"내가 뒤처졌다고 느낄 때,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그 물음은 단순해 보였지만, 답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명확하게 식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기처럼 편재했고, 물처럼 투명했으며, 중력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나의 기준이라고, 나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서서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이 안도하는 선택을 추구했고, 회사 동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뉴스와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에 시간을 썼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묻지 않았다. 아니, 묻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건 사치고, 주어진 계단을 성실히 오르는 것이 책임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계단 위 누군가의 발자국만 쫓았다.
당연히 길을 잃었다. 계단 끝에 도착해도, 나는 여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오르고 싶었던 계단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올라온 모든 시간이 무의미해질 것 같았으니까.
뒤처졌다는 감각은 결국 방향을 잃었다는 감각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니까, 나는 옆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보다 높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애초에 같은 계단을 오르고 있지 않았다. 각자 다른 계단에서, 다른 높이를, 다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뒤처졌다는 것은 환상이었다. 단지 나는 내 계단을 오르지 않고, 남의 계단과 비교하며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 시절 내가 마주한 것은 뒤처졌다는 감각이 내가 나를 잃었다는 신호였다는 것, 그리고 그 신호를 읽어낸다고 해서 곧바로 길이 보이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해한다고 벗어나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 계단 어딘가에 서 있었고, 여전히 옆을 힐끔거렸으며, 여전히 조급했다. 다만 이제는 알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