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왔다. 대학 동기였다.
"다음 주 토요일에 모임 있는데, 올 수 있어?"
나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미안, 그날 일정이 있어서"라고 타이핑했다가 지웠는데,
또 똑같은 거짓말을 하려던 참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또 피하면 평생 이렇게 사는 건가 하는 질문이 거짓말보다 더 비겁하게 느껴졌고, 차라리 한 번 가보는 게 도망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답장을 보냈다.
"응, 갈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보낸 직후부터 후회가 시작됐지만 이미 늦었고, 답장이 왔다.
"오 좋아! 오랜만이다 진짜."
토요일까지 일주일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계속 생각했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적당히 얼버무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안 가는 게 나을 것인가.
며칠이 지나고 다시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 6시, ○○ 식당. 주소 보낼게." 구체적인 장소가 정해지니 이게 정말 벌어질 일이라는 게 실감 났고, 나는 정말 거기에 가야 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불안이 시작됐다. 뭘 입을까 고민했는데, 너무 편한 옷을 입으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너무 차려입으면 또 이상할 것 같아서, 결국 무난한 옷을 골랐다. 거울을 보니 괜찮아 보였다. 아니, 괜찮은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일찍 도착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천천히 걸었고, 장소에 도착했을 때 5시 50분이었다. 식당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문을 열었다.
"어, 왔어!"
누군가 손을 흔들 때 나는 웃으며 다가갔다.
다섯 명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반가워했다.
나도 반가운 척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봤지만 뭘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거나 시켰다.
"오랜만이다. 얼마 만이야?"
누군가 물었다. 나는 "한 2년?" 하고 대답했다. "와, 진짜 오래됐네"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대화가 이어졌다. 누가 어디 갔다는 이야기, 누가 뭘 먹었다는 이야기, 요즘 날씨가 어떻다는 이야기. 가벼운 것들이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쳤고 웃을 때 웃었고, 고개를 끄덕일 때 끄덕였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요즘 뭐 해?"
예상했던 질문이었는데도 실제로 들으니 전혀 달랐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나는... 그냥..."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입이 말랐다. 하고 있는 일은 있지만 말할 만큼 그럴듯하지 않았고, 계획은 있지만 남들이 인정할 만큼 구체적이지 않았고, 목표는 있지만 남들이 이해할 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하고 있어." 애매한 대답이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는 다음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안도했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최근에 팀장으로 승진했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이직했는데 연봉이 상당히 올랐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들으면서 "대단하다", "축하해", "잘됐다" 같은 말들을 했다. 진심이었지만 내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했다.
"너는 어때? 요즘 일은 잘돼?" 누군가 다시 내게 물었다. 나는 "응, 괜찮아. 바쁘게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또 거짓말이었다. 괜찮지도 않았고 바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게 훨씬 편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먹으면서도 대화는 계속됐다. 나는 적게 말했는데, 듣는 편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면 거짓말을 해야 할 것 같았고, 거짓말을 하면 들킬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잠깐 화장실 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았다.
숨을 쉬었다. 크게, 천천히. 진정하려고 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면 돼,라고 생각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거울을 봤다. 형광등 아래 내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웃는 척하느라 지친 얼굴이었다.
왜 간다고 했을까.
휴대폰을 꺼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썼다.
"미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다들 맛있게 먹어."
보냈다. 숨이 조금 쉬어졌다.
화장실에서 나와 식당 문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누군가 "어 벌써 가?" 하고 물었다. 나는 손만 흔들고 나왔다. 미안하다고, 급한 일이 있다고, 다음에 보자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밤공기가 차가웠다. 나는 잠시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집으로 가야 하는데,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집에 갈 준비가 안 됐다.
지하철을 탔다. 집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그냥 탔다. 창밖을 보면서 한 시간을 탔는데, 어두운 터널이 계속 지나갔다.
집 근처 역에 내렸다. 하지만 집으로 가지 않고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캔 맥주를 하나 샀다. 마시지는 않았다. 그냥 차가운 캔의 감촉만 느끼고 있었다.
캔 맥주를 땄다. 한 모금 마셨다. 쓰고 차가웠지만 삼키기는 했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차가운 벤치에 계속 앉아 있었다. 맥주캔을 들고, 밤공기를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