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서 일어났을 때는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었다.
모임에 갔다는 것,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
화장실로 도망쳤다는 것,
거짓말로 빠져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사흘 정도 그렇게 보냈는데, 외출 없이, 만남 없이, 답장 없이, 그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지냈다.
커튼을 열지 않았고, 휴대폰은 뒤집어 놓았으며,
커피는 식은 채로 두었다.
나쁘지 않았다기보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져 있었다는 게 정확했다. 죄책감도 불안도 조급함도 없었고,
그저 내면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다가, 채우는 일 자체를 멈춘 뒤의 공백 같은 것.
사흘째 되던 날 메시지가 왔다. 또 같은 동기였다.
"저번에 못 봐서 아쉬웠어. 다음에는 꼭 보자."
나는 메시지를 읽으면서, "다음에는 꼭"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제를 다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음이라는 시간이 과연 올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답장을 쓰려다가 멈췄다.
"응, 다음에 보자"라고 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이번에는 다른 문장을 타이핑했다.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요즘 상태가 안 좋아서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저번에도 그래서 먼저 나온 거야. 다음에 보자고 말은 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
타이핑하고 나서 화면을 응시했다. 보내야 하나?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지만 동시에 거짓으로 포장된 핑계보다는 이것이 조금 더 정직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바빠서"라는 익숙한 변명보다는 이것이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느껴졌다.
전송했다.
몇 분 뒤 진동이 울렸다.
"괜찮아. 무리하지 마. 너 준비되면 그때 연락해. 기다릴게."
나는 그 메시지를 여러 번 읽었다. "무리하지 마"와 "기다릴게"라는 말들이 위로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기대인지 구분이 안 됐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는 것.
정직이 주는 무게가 아니라, 거짓을 내려놓았을 때의 가벼움이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일상은 조금씩 돌아왔다. 밖에 나가기 시작했고, 산책을 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냥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보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걷는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 멈춰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물이 끓고, 원두 가루가 필터 위에 쌓이고, 커피가 떨어졌다. 첫 모금은 뜨겁고 쓰고 약간 시었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마실 수 있었다. 완벽함이 조건이 아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거짓으로 나를 방어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작은 결정이지만, 그것이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창밖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걷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다시 걸을 것이다. 아니, 이미 걷고 있었다. 천천히,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거짓말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삶을 다시 정의한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한 가지를 다르게 했다. 나는 아직 정의하지 못했지만, 방향은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