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이나중 탁구부
수능을 한 달 앞두고서 우리는 세 번째로 <이나중 탁구부>를 읽고 있었어. 수능이 끝나고서 우리는 네 번째로 <이나중 탁구부> 제 1권을 집어들었지. 기억나? 13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우리 대학에 가게 되면 은하계 최고의 진상이 되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낄낄거렸었잖아.
합격자 발표가 있고 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3 시절을 불태웠던 독서실에서 다시 만났지. 이런 꼴통들을 합격시킨 대한민국 대학들을 조롱하면서 짐을 싸들고 독서실 현관을 나서던 그 때,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사이로 비추던 햇살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언제나 곧 터질 듯 탄산 가득했던 날들이 김 빠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 였을까? 사람 구실 좀 해보겠다고 뻔한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던 때부터 였을까? 먹고살겠다고 바둥거리던 어느 날, 너무나 오랜만에 퇴근 길에서 만난 네게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 지키지 못할 인사치레를 건네고 종종 걸음으로 내뺏던 그때부터 였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가장 큰 실수는 마지막까지 온전한 꼴통으로 남아있지 못했다는 거였어. 최고의 엘리트가 되지 못할 바에야 최고의 진상이 되었어야 했던 거야. 어설픈 안전빵 아저씨로 얌전히 연명하는 건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 거였잖아.
얼마 전 마에노의 '풋고추 서브'를 다시 한번 감상할 기회가 있었지. 우리가 세계명화 10선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성토하며 직접 시전해 보이겠다, 난리를 치던 그 장면 있잖아. 그런데 말야..... 웬걸. 몇 번을 봐도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떼굴떼굴 굴렀던 그 장면이 이제 하나도 웃기지가 않은 거야. 그 것 말고도 빵빵 터지던 명장면이 페이지마다 가득했던 그 이야기가 왜 이리 썰렁해진 걸까.
우리 참 멀리도 왔다. 그렇지? 아마도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거야. 그런 거지? 허둥지둥 넥타이를 틀어매고 통근 지하철에 매달려 꾸벅꾸벅 졸면서 열심히 뛰고 부지런히 먹고 살아야 하는 거지? 그래. 나쁘지 않아. 부끄럽지 않아. 후회하지도 않아. 오히려 가끔은 이렇게 착실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한 지경인걸. 그런데 왜일까.... 슬퍼.
20150905
食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