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Fictions_이별보고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식충


'고객님의 포인트 현황을 알려드립니다.'


낯익은 극장체인의 이름을 달고 이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그 극장은 멤버쉽에 가입하면 티켓 구매금액의 일부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었다. 누적된 포인트는 팝콘이나 콜라는 물론 평일 무료관람권으로 바꿀 수도 있었고 꾸준히 모아 4만 점에 이르게 되면 소파로 된 좌석에 베버리지서비스까지 제공되는 프리미엄 상영관의 주말 관람권(알아보니 상당한 가격이었다) 두장과 교환할 수가 있었다.


그래. 당시에 우리가 보지 않은 개봉 영화는 거의 없었지. 언제부터인가 포인트는 '최후의 사은품'과 교환할 수 있는 점수를 넘어서 있었고 그것을 언제 사용할 것인지 우리는 함께 즐거운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우습지만 그것은 금전적 가치를 떠나 우리가 공유했던 많은 날들 중 어떤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얽힌 기억의 증거이자 기념할만한 상징 같은 것이었고(만남이란 그런 트로피들을 진열장 안에 나란히 세워가는 일련의 과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둘이 함께 일 때만 사용한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 있었다. 결국 그것은 지키지 못했던 수많은 약속과 꿈들의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지만.


우리는 이제 한잔의 콜라를 나눠마시며 팝콘통 안에서 손장난을 치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사용할 날을 위해 포인트를 적립하면서 추억을 갱신해나가는 사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뜬금없이 날아온 한통의 메일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고 끝내 사용하지 못한 우리의 '실적'이 반토막 나있는 모습을 도표까지 그려가며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나마 남겨진 분량 역시 얼마 후면 깨끗이 사라질 것이라는 친절한 귀띔도 함께.


아....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거구나. 4만 점이 쌓일 때까지의 시간과 그 만큼이 다시 소멸될 때까지의 시간, 그것은 얼마나 많은 날들이었을까. 열 손가락 펴고 헤아려보다가 문득, 사용해보지도 못한 그깟 포인트 따위가 아까워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느닷없이 뜨끈해지는 눈시울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먹먹한 가슴을 안고 한참을 멍하니 먼 산만 쳐다보고 앉았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서른세살이 되었다.




20100205

食蟲



"언젠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일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 프랑수아즈 사강, 《한달후 일년후》中



Isshin Inudou_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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