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순간
2023년 겨울 어느 날 혜식이가 유독 이상한 날이었다. 엄마가 외출하시는 걸 못하게 막고 같이 가려고 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하는 행동이라면 그냥 그럴려니 하겠지만 평상시에 얌전하던 아이가 갑자기 그러니 당혹스러웠다. 원래라면 학원에 가겠지만 이날은 유독 가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집에 있기로 결심했다. 혜식이가 분리불안증인가 싶어서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하다가 문득 아빠의 부탁이 생각나서 경동시장에 들르기로 결심했다. 혜식이는 또 울부짖고 난리를 쳤지만 진정시키고 집을 나섰다.
버스로는 처음 타고 가서 그런지 낯설었다. 가까운 곳에 살아도 안 가본 곳인데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고서 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생각에 잠겨있다가 내릴 구간이 다 와서 내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시점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J CH J님 보호자님 되시죠?"
"네. 맞는데요."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병원 주치의 000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J Ch J님의 상태가 위독하셔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
그 순간 나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는 떨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머물기 시작했다. 병원 주치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빠의 상태와 그리고 임종하실지도 모르니 최대한 보실 수 있는 가족을 최대한 부르라고 말했다. 알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끝내고 그 자리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단골가게서 옥수수수염차를 구매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내내 혜식이의 이상반응을 생각했다. 혹여 아빠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얘가 무언가를 감지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과 함께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자마자 막내고모께 아빠의 상태를 말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질 안았다 눈물만 흘려서 결국 주치의 녹음을 들려주었고 고모님도 내용을 들으면서 우셨다. 그리고 가족들한테 차례대로 소식을 알렸고 병원서 만나기로 했다.
가기 전 아빠가 부탁한 옥수수수염차를 끓여서 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옥수수수염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고모는 지금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아빠가 꼭 끓여 오라고 했으니 이것만 끓이고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인덕션이라서 그런지 야속한 냄비는 잘 끓여지질 않아서 속을 애태웠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이 됐고 물통에 잘 담고서 택시를 불렀다. 아빠한테 가려고 하는데 혜식이가 울면서 따라가려고 하는 것을 갔다 온다고 말하면서 겨우 떼어내고 아빠에게 향했다.
택시 안에서 고모와 나는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 고요했다. 가는 내내 아빠한테 못되게 말한 거 화냈던 일이 생각나면서 후회가 가득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아빠의 병동으로 향했다. 아빠의 성함을 말하고 간호사님의 안내를 받고 병동으로 들어갔다. 눈물 콧물 다 흘리고 훔치면서 들어간 병동에 마주한 아빠는 말한 것과 달리 상태가 괜찮아 보이셨다.
" 아빠? 아빠 괜찮아?"
"……"
아빠는 말없이 손짓으로 위치를 가리키면서
"…000 좀 … 줘봐."
나는 서둘러 아빠가 달라는 것을 찾아서 드렸다. 아빠는 그걸 입에 넣으셨고 잠시 후 간호사님이 오셨다. 잠시 아빠를 보시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말하셨다.
"J CH J님 지금 금식이신데 뭐 드신 거예요? 잠깐 입을 열어 보시겠어요? "
입을 벌린 아빠를 향해 냄새를 맡더니 무슨 냄새인지 확인이 되질 않아 아빠께 말했다.
"J CH J님 지금 금식 중이라서 어떤 것도 함부로 드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고 간호사님은 나가셨다.
나와 고모는 순간 뻘쭘해졌다. 금식이라는 푯말이 없었기에 꿈에도 상상을 못 했고 금식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와중에 달라고 해서 드신 아빠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와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정말 다행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선 아빠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이 드셨을 텐데 위기의 순간을 잘 넘겨준 아빠께 너무 고마웠다.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오빠도 곧 도착해서 아빠를 뵈러 갔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오시길 기다리는데 아빠 상태가 생각보다 좋으셔서 안 오셔도 된다고 연락을 드린 후 잠시 병동에 갔을 때 담당 간호사님이 오셔서 아빠 입원 상주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잠시 집에 갔다 온다고 말한 후 오빠차로 집에 돌아왔다.
간단하게 짐을 꾸린 뒤에 엄마를 기다렸다 혜식이가 하도 불안증세를 보인 후라서 갑자기 나가면 또 불안증세를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가 오시길 기다렸다. 엄마가 오시니 혜식이는 꼬리를 빠른 헬리콥터처럼 붕붕 흔들고 울더니 엄마 옆에 찰싹 붙었고 곧바로 나를 외면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혜식이를 쳐다봤지만 바로 안심을 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한편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