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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딜런'의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다

산문

by 박성현






오후 8시, ‘딜런’의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다



박 성 현




대부분의 음악들은 귀에 닿자마자 사라진다. 하지만 어떤 음악은 심장까지 흘러와 대못처럼 강렬하게 박힐 때가 있다.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혹은 멀어서 아주 희미할 뿐이더라도 그 ‘음악’은 명징한 색깔과 무게를 가지고 모든 감각을 사로잡는 것이다. 시각의 매혹은 즉각적이지만 오래가지 않고, 미각이나 촉각은 보수적이라 할 만큼 단단해서 좀처럼 매혹의 대상을 바꾸지 않지만, 음악은 다르다.


음악은, 그것이 비록 전방위로 펼쳐져 있지만, 다시 말해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려오며, 때로는 소음이라는 잔혹한 소리의 더미로 추락할 때도 있지만, 음악은, 우리가 그 소리의 깊이에 순간적으로 침잠했을 때만큼은 청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일시에 소거하고 단절시키며 잿더미로 만들어 오로지 ‘음악’만 붙들도록 만든다. 음악은 놀랍게도 불에 덴 듯한 강렬한 매혹을 그 본질로 한다.


이러한 사태는 중국의 혜능선사가 길 위에서 우연히 금강경의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는 독송을 듣자마자 깨달음을 얻었던 바와 같고, 파스칼 키냐르이 “류카트 곶에서 다이빙하는 사람은 대기로 혹은 허공으로 혹은 바다로 혹은 죽음으로 뛰어내리는 게 아니다. 시간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불가역성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라고 쓰면서 부테스의 다이빙(뛰어듦)을 음악에 대한 절대적 매혹에 빠져드는 것으로 표현한 바와 같다.


*


그 절대적 불가역성의 ‘음악’은 오후 8시에 시작된다─그 시각에 ‘딜런’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와 B는 딜런의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고정된 자리에 앉고, 짐을 정리한 후 문 옆에 붙박인 맥주 냉장고로 가서 각자 취향에 맞는 맥주를 집어 온다. 물론, 음악들이 홀을 장악하고 사람들의 귀를 뽑아내고 있다. ‘딜런’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단조로운 가구 배치와 유달리 어두운 조명에 시선을 뺏긴다. 곧바로, 그들은 살아서 꿈틀대는 ‘음악’에 자신의 의지를 뺏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말하자. 그 음악들은 나를 집중하고 마모시키며 고립으로 몰아가서는 나의 언어들을 뽑아버린다고. 음악을 듣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거나 아예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이때 딜런의 풍경은 무성 영화의 검은 밤과도 같다.


이 ‘말할 수 없음’이라는 소요가 시작되기 직전에, 사람들은 온몸을 관통하는 미세한 진동과 균열과 지극히 사소한 체취는 물론 의도적인 침묵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감각에 연결된 (현실의) 모든 연결선을 끊어버리는 독특한 행동을 한다. 어깨를 몹시 움츠리거나 볼펜 똥으로 꽉 찬 탁자에 낙서를 한다거나, 검은 허공을 떠도는 희미한 이미지를 응시한다. 모든 것은 무의지적으로 진행된다.


고백하자면, 나와 B가 딜런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내’가 내 몸의 안으로 철저하게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B는 그러한 ‘나’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가버렸다. 왜냐하면 내 두 귀가 딜런의 소리들에 휩쓸리며 완전히 닫혀버렸기 때문이었다.


딜런의 정확한 이름은 “Bob Dylan & The Band”다. ‘소리’들의 불완전하면서도 싱싱한 육체가 홀을 장악하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꽂혀 있는, 이제는 나와 B의 한결 같은 ‘귀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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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과 경칩, 청명이 지났다. 만년의 결빙도 서서히 풀어지는 4월이지만,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대기에 햇살은 드문드문 비칠 뿐이다. 나는 시청에서 내려 시립미술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정동교회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순백의 목련을 바라보면서, 덕수궁 뒤쪽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간다. 몇몇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무심히 스마트폰을 보는데, 그들의 시선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덕 아래 자그만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휴일이라 학교에는 아무도 없을 듯했지만,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분명해서 맑고 투명하며 멀리까지 간다. 나와 B는 한참을 바라보며 듣다가 문득, 우리의 걸음이 저 소리의 결들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머리 위의 구름은 언제나 방향이 분명해서 대규모의 바람과 대기를 끌고 가는데.


100년을 훌쩍 넘은 새문안교회와 한글학회를 뒤로하고 내처 경복궁역까지 걷는다. B는 구두가 소란스럽다고 말한다. 대학 시절부터 걷기는 습관이지만, 게을러진 탓에 요즘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 게다가 오랜만의 걷기는 근육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햇빛은 느슨해졌고 공중에 붉고 얇은 어둠을 하나둘 만들고 있었는데, 우리는 걷기보다는 머물러 있을 때가 더 많았다. 효제동 쪽으로 열린 횡단보도를 지났다.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표정을 과장하며 웃었다. 봄의 여행이란 매혹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단단하고 빠르게 뽑아낸다. 이를테면, 그것은 식기가 가지런히 놓인 선반에서 언제든지 아이리스 찻잔을 꺼내는 것과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길을 물었다. Bob Dylan이 어디죠? 그때까지 내게 딜런은 장소가 아니라 가수였다. 그는 통기타를 튕기며 작곡을 하고, 음표 밑에 감각적인 노랫말을 적는다. 그는 자신의 노래에 어울릴 목소리로 그 곡을 불렀다. 중년 남성은 그 딜런을 장소로서 물었고 우리에게서 한 발 물러나 기다렸다. 바로 그날이 나와 B가 ‘딜런’을 처음 방문한 날이다.


*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효자동 방향(1번 출구)으로 십여 미터 걷다보면 시장 통으로 접어드는 작은 골목이 나온다. ‘시장’이라 하기에는 무척 소담한 규모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웬만한 잡화들은 다 들어서있다. 철물점과 방앗간도 있고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에서는 가벼운 밑반찬까지 판다. 싱싱한 과일을 비스듬하게 쌓은 초입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료’(明瞭)와 ‘서른 즈음에’를 지나고 연탄불로 굽는 ‘대구막창집’을 거쳐 채부동국수집 앞에 섰다. 정확히 오후 8시가 되자, “Bob Dylan & The Band” 간판에 불이 켜졌다. 이 뮤직바의 기상 시간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오후 7시 50분에도 닫혀 있을 때가 많다. 좁은 계단을 오르고 딜런의 앳된 얼굴이 붙박이 된 철문을 열었다.


딜런의 내부는 모호하다. 조명조차 몇 개 안 된다. 어둠은 항상 늪처럼 고여 있다. 자줏빛이고 노랑과 보라가 마구 뒤섞여 있을 때도 있다.


특이한 것은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밥 딜런보다 지미 핸드릭스의 몽환적인 사진을 먼저 보게 된다는 점이다. 딜런과 핸드릭스의 시대적 중첩 혹은 포크와 록의 경계 없음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밥 딜런의 사진은 바깥으로 나갈 때야 볼 수 있는데, 나가는 방향의 문 왼쪽에 뜬금없이 붙어 있다. 그래서일까. 나와 B는 ‘딜런’을 시와 음악의 환상적인 겹침으로 이해한다. 알파벳 “B-O-B”와 “T-H-O-M-A-S”를 어디로 붙이느냐에 따라 의미와 실체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를 몰아간다”는 1930년대의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의 강렬한 문장과 “얼마나 자주 위를 올려다봐야/ 한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라고 노래하는 1960년대의 상징, 밥 딜런의 문장은 그 대상과 지향,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딜런’을 발음하는 순간 그 두 거장은 함께 온다. 유화처럼 덧칠된 채 누가 누구인지 결코 알 수 없는 모호성으로.


나는 딜런에서 7번의 겨울과 봄을 지냈다. 딜런에 가 본 사람은, 그 끈적끈적한 황홀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 것이다. 맨 처음도 그랬지만 지금도 딜런은 겨울잠을 자는 커다란 곰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면 땅속에서 겨울과 호흡하는 곰의 규칙적이고 부드러우며 탄력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와 B는 잠자는 곰의 위장에서 급격히 소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손끝부터 문드러지고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팔과 어깨와 가슴과 얼굴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음악은 나의 언어를 해일처럼 덮어버리면서 언어에 접속된 사물들과 기억들을 모조리 떼어내고서는, 언어의 표면과 심층에 얽힌 문장들을 모두 백지로 돌려세웠다. 그 음악은, 이를테면 책의 접힌 모서리, 혹은 다른 세계에서 타전된 전보와 같은데, 내게 배달되는 순간 나는 주어를 잃은 문장처럼 무의식 깊이 가라앉았으며, 소리들이 나를 분해하도록 좀 더 무기력해지고, 스스로에 대해 무례해졌다. 암막 블라인드 속에서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소진되며 암전되는 절대적인 ‘소통-부재’의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이 시작되면 B는 “제발, 현실 감각만큼은 열어두라”고 충고하지만, 이미 나는 내게서 멀리 떠난 후다.


두 면의 벽을 에둘러 배치된 수천 장의 CD와 LP판은, 역설적이지만 딜런의 사소한 부분이다. 4개의 압도적인 스피커와 그 스피커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들의 균형을 맞추는, 공중에 매달린 2개의 작은 스피커 또한 사소할 뿐이다. 원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2개의 고가의 진공관도 마찬가지다. 딜런의 풍경은 지나치게 사소해서 그 사소함을 주관하는 주체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딜런의 주인은 키가 크고 약간 살집이 있으며, 낯을 몹시 가린다. 자기만의 은밀한 다락방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야 할 때처럼 어색해 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앉아 신청한 노래를 분류하고 순서를 맞추며 데크에 CD나 LP를 올려놓는다. 신청곡이 없으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리를 튼다. 나와 B는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그의 취향을 좋아한다. 그는 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맥주는 손님들이 알아서 꺼내고, 안주는 강냉이나 오징어가 전부니 그는 자신의 동선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B는 오로지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딜런은 음악들이 귀를 거치지 않고 심장에 직접 닿을 수 있는 마법의 상자로 불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딜런을 발견하고, 나와 B는 일주일에도 몇 번을 그곳에 갔다. 적어도 몇 년은 그랬다. B는 여행 일정을 짜듯 꼼꼼하게 내부를 살폈다. 몇 개의 낡은 탁자와 의자가 어두운 조명 속에 우두커니 방치되어 있었다. 지미 핸드릭스의 기묘한 사진들과 몇 배로 확대해 벽에 걸쳐놓은 비틀즈 앨범, 젊은 시절의 밥 딜런 사진 그리고 홀의 분위기와 배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주방— 나와 B는 왜 그토록 ‘딜런’에 집착했을까. 순례하듯, 그 어둡고 축축한 곰의 위장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마네의 회화를 보듯, 저 비대칭의 음악들은 나와 B를 다른 세계로 보냈는데, 아예 고립시키기까지 했는데.


*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영어사전을 사러간 서점에서 아버지는 불쑥 비틀즈라는 단어를 아냐고 물으셨다. 이어 영어사전에 이름이 올라온 유일한 록그룹이라고 설명하셨다. 확인해보니 정말 ‘Beatles’라는 알파벳이 사전에 적혀 있었다. 나는 영어사전을 집어든 아버지의 두꺼운 손바닥이 몹시 우스웠다. ‘비틀다’라는 동사를 바로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은 너무 사소해서 잊을 수가 없다. 그때부터 나는 집요하게 아버지 방에 소장된 비틀즈를 찾았다. 테이프는 늘어지고, 해적판 LP는 스크래치가 났다. 비틀즈도 늘어지면서 튕겼다. 또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렸다.


— 비틀즈요?

— 그래, 비틀즈. 기억해 둬라. 크면 알거다.


딜런에서 내가 처음 신청한,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소리’의 육체를 탐닉하게 된 곡은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 거칠게 번역하면 ‘삶의 어느 하루’다. 지금도 나와 B는 오래 걸어 다닌다. 걷다보면 오후 8시다. 딜런의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다. (*)





계간 <시인수첩> 2019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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