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없는 나무는 혀가 없는 입으로

by 박성현






잎 없는 나무는 혀가 없는 입으로


박성현




귀가 열리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바람은 아무 때나 젖은 손을 내밀어 꽃을 움켜쥐었고, 우악스러운 악력握力으로 목을 잘라냈다 무기력하게 떨어지는 기척들—꽃의 잘려버린 반생이 저기 서늘한 그늘에 얹혀 있는 것이다 한 잎 뒤척일 때마다 꽃은 살기를 흘려보냈다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떠밀려 가는 군중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낮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면도날과 거품 사이로 슬그머니 끼어드는 왼손, 그늘에 서서히 밀려나버린 햇빛, 그리고 표정을 숨긴 채 엉망으로 취해버린 나무들이 뒤죽박죽 섞였다 시청 쪽으로 가는 길에 혀 없는 입이 먼지 더께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귀가 열리는 곳에 마음이 있다. 눈이 닿는 곳에도, 마음이 웅크려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대낮의 어둠으로 몸을 돌렸다. 어디선가 포르말린 냄새가 났다. 냄새가 흐르듯 구겨졌던 어둠이 펴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당신의 악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아무 때나 젖은 손을 내밀었다. 꽃을 움켜쥐더니 목을 부러뜨렸다. 꽃의 반생이 지척에 누워 썩어갔다. 지난 해 언뜻 보았던 수련의 기묘했던 살기가 코끝을 스쳤다. 오늘 아침 면도를 하는데, 면도날과 거품 사이로 내가 모르는 왼손이 슬그머니 끼어든 것이다. 어둠이 최적화된 시간은 대낮이다. 태양이 뜨거운 만큼 어둠이 집중된다. 나는 수련을 생각하면서 대낮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혀가 없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혀가 없어도 말은 흘러간다. 희뿌연 창문도 폭염에 축늘어진 앞사귀도, 플라스틱처럼 녹아버린 골목들도 축농증에 걸린 듯했다. 나는 거품을 걷어내고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잎 없는 나무가 꽂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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