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박성현
좁은 문을 열면 우체국이다
여자는 계단을 내려가다 멈추고 한동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다시 올라간다
두 개의 호수 사이에
숨 막힐 듯 고여 있는
밤과 낮
*
여자는 아파트 난간에 앉아 뒤엉킨 철로를 바라보다가 가끔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아주 가끔 바람이 불고
여자는 붉은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든다
*
길고 긴 화물열차가 멈춰 있다가 움직인다
경적이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울리고 서서히 멀어지다가 골목 끝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여자는 웃으며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하루 종일 틀어대는 밤을 흥얼거린다
느릿느릿 라자즈*에 맞춰 흘러내리는
여자의 살과 뼈
*
더러운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두커니 철로를 내려다본다 여자는 난간에 앉아 누구도 부른 적 없는 라자즈를 흥얼거린다 응고된 피처럼 탁한 경적을 울리며
여자는
봄이 늙기 전에 떠나기로 작정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밤과 낮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프로그레시브 그룹 Camel의 1999년 앨범. rajaz는 ‘낙타가 사막을 걷는 리듬에 맞춰 시를 낭송한다'는 뜻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카멜의 라자즈는 아주 느리다. 낙타의 두툼한 발바닥이고, 누깔에 감기는 모래바람이다. 태양빛이 켜켜이 쌓였다가 무너지며 바닥으로 고꾸라져 사라지는 사막의 황혼이다. 음화를 훔쳐보던 다락에서 얼핏 보았던 철근처럼 단단한 침묵과 고요다. 심장 박동의 그 뚜렷하고 엄밀한 간격을 조금씩 뒤로 밀어버리는 터라 그 만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고드름을 씹어가며 동지를 지나고 있던 것인데, 밤늦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는 아랍에서 잠시 귀국한 아버지에게 식초 같은 퀘퀘한 모래 냄새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터에 쌓인 목재 더미에 걸터앉았다. 산비탈에는 은회색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저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리 마비로 가끔 대침을 맞던 침술원 깃발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히 알았지만, 두 다리는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아파트 난간에 앉아 뒤엉킨 철로를 바라보던 여자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