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박성현
멀리서 철로를 치는 소리가 나고 빠르게 사라졌다 몸에 꽉 끼는 소리였다 얇아서 속이 다 비쳤다 미안하다는 말을 당신에게 했는데 그때도 철로를 치고 달리는 바퀴소리에 묻혔다 미안하다는 말이 닿지 않아서 나는 한 겨울이었다 지붕에 자리를 튼 먹구름을 쫓아냈다 입김만 불어도 벌레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정처 없기로는 마찬가지였다 한 겨울에도 나는 맨발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면 당신의 구석이 나를 에워쌌다 당신의 구석에는 늘 울음이 고여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몸에 꽉 끼는 창백한 소리였다 얇아서 속이 다 비쳤다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문학수첩, 2020.
[以後, 시작노트] '걷는다'라는 동사의 본질은 두 발의 교차다. 반복이고 순환이다. 기차가 그 육중한 맨몸으로 철로를 구르는 것도, 먹구름 밑으로 벌레들이 두 날개를 비벼 날아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걷는다'는 동사는 하반신에 얹혀진 머리와 몸통, 두 팔을 감싸고 지탱하지만 얇은 셔츠처럼 몸에 달라붙고 속을 다 게워낸다. 나는 맨발로 오래 걸었다. 발바닥에 흙과 작은 돌멩이가 박혔다. 태양이 사라진 곳에서는 검게 문드러진 이끼가 뒤꿈치에 달라붙었다. 웅덩이를 밟자 내 여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어쩌면 당신의 울음을 걷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기차가 지나갔다. 내 걸음들은 모두 속을 게워내면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