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자는 가벼워지고 있다 끓는 물처럼 타오르며 통증보다 더 빠르게 여자는 빛나는 구름 위로 뭉개진 사과를 올려놓는다 스카프를 매고 의자를 차버린다 거울을 보면 모든 것이 시시해져 이것은 악몽의 한 때 친절한 접시를 떠나지 못하는 벌레 먹은 빨간 사과의 한 가운데 나쁘게 말하면서 여자는 오후 2시의 익숙한 공백 속에서 공백보다도 더 가벼워진다 여자는 낡은 트렁크를 밀며 개찰구를 나간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얇은 발목을 긁으며 한없이 가벼워진 목과 머리 사이에 팽팽한 스카프가 팔랑거리고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以後, 시작노트] 무슨 일이 있든, 나는 쓰고 있다. 써야 한다는 강박이 내 손을 잡아끌어도 좋다. 나는 쓰고, 나의 감각은 이 '쓴다'는 작업의, 그 촘촘하고 세밀한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삶게 남은 것이라고는 글쓰기밖에 없으니, 그것이 강박이든 편집증이든 나를 몰아세울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오늘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몸이 석유를 흠뻑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무겁고 느끼했다. 낮잠을 자도 늘 악몽의 절정에서 시작했다. (내 꿈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다. 깨고 나면 머리가 무거운 이유가, 그 이미지들의 조합을 힘겹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낮의 어둠 속에서 오래된 라디오처럼 앉아 있었으나 흘러간 노래 한 소절도 나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었지만 찬 바람에 놀라 문을 닫았다. 책상에 앉아 더운 물을 마셨다. 환절기를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위로에 불과했다. 기침이 심해 약을 먹었다. 약은 식도를 타면서 빠르게 풀어졌고, 위에서 완적히 녹아버렸다. 여기는 내 삶의 어디쯤일까. 가벼워진 목과 머리 사이일까.